시집에서 읽은 시

금호동 5/ _ 이별의 부호/ 박호은

검지 정숙자 2024. 11. 2. 02:48

 

    금호동 5

       이별의 부호

 

    박호은

 

 

  저 산 너머가 얼마나 좋으면

  곱게 단장한 꽃노을

  바람난 여자마냥 바삐도 넘어 가는가

  내 엄마도 벽제 어느 산을 오르더니 소식이 없다

  그 산 너머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초가을 오후 문득 찾아간 엄마의 뜨락

  산국화, 쑥부쟁이, 구절초꽃들과 흐드러져

  가을 햇살 등에 업고 반짝이고 있더라

 

  그 은밀한 사생활을 목격하는 순간

  유년의 저녁으로 소환되던 건조한 눈물

 

  같이 놀던 친구들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골목길은 붉은 그늘에 지워졌다

 

  속울음 덮고 누운 밤

  마음에서 보내지 못한 엄마의 팔을 감고

  새우처럼 잠이 들곤 했다

 

  살아 있는 자가 갑이어서

  반짝이는 풀꽃들을 모조리 뽑아버리는 효

  뿌리에 묻어 나오는 익숙한 살냄새가

  봉분 뜰에 가득하다

 

  꽃과 살을 섞고 있는 이 찬란한 연애 앞에

  헝클어져 흔들리는 애증

  오래 꿇은 무릎 사이로 풀꽃 하나 다시 심는다

 

  굳이 해석하고 싶지 않았던 이별의 부호

  억지스럽게 버텨온 마음이 모를 리 없다

  그날처럼 오늘도 산 넘어가는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 저 붉은 노을빛은

  그리워 그리워 보내지 못한 남은 자의 마음이란 걸

      -전문-

 

  해설> 한 문장: 같이 놀던 친구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골목길에 드리워진 "붉은 그늘"은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 저 뷹은 노을"이기도 하며, 이들은 이 시의 부제인 "이별의 부호"이자 어머니가 시적 화자에게 드리운 상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독이 들어 있는 상처이기도 한 이별의 부호를 간직하며 살아간다. "마음에서 보내지 못한 엄마의 팔을 감고/ 새우처럼 잠이 들곤 했다"거나 "뿌리에서 묻어나오는 익숙한 살 냄새"에 황홀해하는 모습이 그러한 현실을 암시한다. 특히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 저 붉은 노을빛은/ 그리워 그리워 보내지 못한 남은 자의 마음이란 걸"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화자는 그리움이란 상처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서 살아간다. 부재가 만들어낸 상처는 시적 화자의 "헝크러져 흔들리는 애증"을 자아내면서도 해독되지 않은 사랑으로 남아서 삶에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해독되지 않는 상처는 어찌하여 시적 화자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삶의 동력을 제공하는 것일까? 그것은 세속적 가치가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의미의 영역으로 시적 화자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p. 시 50-51/ 론 144-145) <황치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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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모래는 지나온 시간을 덮어버린다』에서/ 2024. 9. 25. <미네르바> 펴냄

 * 박호은/ 서울 출생, 2016년 『미네르바』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