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푸른 바위 외 1편/ 이관묵

검지 정숙자 2024. 11. 1. 01:24

 

    푸른 바위 외 1편

 

    이관묵

 

 

  바위 혼자 익는 저녁 옆에

  바위로부터 슬며시

  뺨을 얻어

  등을 얻어

  마음 개 놓고 고쳐 앉는다

  바위의 일원으로

 

  귀는 물소리에게 떼주고

  눈은 구름에게 퍼주고

 

  내가 바위로 익어

  바위가 나로 익어

 

  아무도 모르는 저녁이 왔다

     -전문(p. 59)

 

 

    --------------

    서향집

 

 

  외양간의 누런 소가

  자신을 내일 읍내장에 판다는 사립문의 몸 비트는 소릴 듣고

  밤새 잠 안 자고 뒤척이는

 

  그런 집을 나는 살았다

 

  새벽녘 오줌 누러 나왔다가 소 얼굴 쓰다듬어 주고,

  한참이나 목을 꼬오옥 안아주던

 

  그런 집을 나는 살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중절모 쓴 소 장수 손에 끌려가던 소가

  되돌아 허공에 큰 울음 띄우던

 

  그런 집을 나는 살았다

 

  그 뒤부터 매일

  저녁해 만한 소 울음이 떠 있는 

 

  그런 집을 나는 살았다

      -전문(p. 36)

 

  --------------------------

 * 시집 『서향집』에서/ 2024. 10. 21. <서정시학> 펴냄

 * 이관묵/ 1947년 충남 공주 출생,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수몰지구』 『변형의 바람』『저녁비를 만나거든』『가랑잎경』『시간의 사육』『동백에 투숙하다』『반지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