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저글링Juggling처럼/ 박재화

검지 정숙자 2024. 10. 23. 01:20

 

    저글링Juggling처럼

 

     박재화

 

 

  안절부절못하는 소년을 바라보며, 고창증* 걸린 황소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다

 

  가발 쓴 아이에게 자전거타기 가르치는 젊은 아버지, 안간힘으로 햇살 감기는 뒷바퀴를 잡아당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누가 입대라도 하는지 가로등이 골목을 그러안고 끔벅거린다

 

  저 함박꽃 언제 화엄세계를 이루었나 엊그제도 가지 끝에 찬바람만 비틀댔는데

 

  시드볼트***에선 언젠가인지 모를 언젠가를 기다리며 거처 잃은 씨앗들이 가면假眠의 밤을 보내고 있다

 

  죽음이 일상이고 삶은 비정상이라고 TV에서 안경을 손에 쥔 법의학자가 일갈하는 밤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 한 몸 안길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깊은 속으로 무장무장 걸어 들어가는 거다 새벽이 새떼를 날릴 때까지

    -전문(p. 49) 

 

   * 鼓脹症Bloat: 반추동물이 걸리는 헛배 부른 병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 Seed Vault: 경북 봉화에선 야생식물 종자를, 노르웨이 스발바르에선 작물종자를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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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4 가을(95)호 <신작시> 에서

 * 박재화/ 1984년 『현대문학』 2회 추천 완료로 등단, 시집『도시의 말』『우리 깊은 세상』『전갈의 노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