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적벽강/ 김찬옥

검지 정숙자 2024. 10. 28. 02:10

 

    적벽강

 

    김찬옥

 

 

  고향 집에 혼자 남은

  어머니의 눈은 늘 수평선에 걸려있었다

 

  거친 파도에 깎여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적벽처럼

  켜켜이 살집을 내어 준 자리에 갖가지 무늬를 새기고

  오늘도 굽이쳐 오는 물살을 낸발로 마중 나오셨다

      -전문-

 

  시인의 산문> 中: 자연은 내가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등불이 되어 주었다. 폐경기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 평상시에 좋아하던 일들도 하나같이 다 재미가 없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반문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스스로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병원 가는 일을 접고 산책 속에 빠져 점자 같은 나를 읽어내기로 했다. 산행하다 보니 죽어있는 나를 깨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무와 꽃들과 작은 풀꽃들까지도 다시 태어난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고 소통하다 보니 우울증이 제 발로 서서히 뒷걸음쳐 갔다

 자연을 사랑하는 내게 우울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매년 겨울 끝자락에만 서면 우울증을 앓는다. 나에게 있어 2월은 가장 길고 버거운 달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소멸하여 가면 나도 따라 생기를 잃어가고, 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몸에서도 뭔가 다시 싹틔울 준비를 한다. 난 태양 숭배자는 아니지만 자연을 가까이 한 까닭에 해가 뜨면 나도 떠오르고 해가 지면 나도 따라 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글을 쓰는 일도 대부분 낮에 하는 편이고 흐린 날보다는 맑은 날이 더 좋다. 그래서일까 난 언젠가부터 날씨 요정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내가 비를 피해 다니는 것인지, 비가 나를 피하는 것인지, 바깥 외출할 때도 우산을 펴는 일이 적어졌다.

  '부처도 일체중생을 다 제도하지만 실은 한 중생도 제도된 자가 없다'라고 한다. 사람은 실수의 연발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완으로 남을 수밖에. 꽃들도 영원히 꽃일 수는 없다. 피는가 하면 추하게 질 줄도 아는 게 꽃이다. 자연은 소리 없이 질 줄을 알기에 다시 필 줄도 안다. 실수하고 이해받고 용서받고 용서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어둠을 견디는 자만이 다시 태양을 맞을 수가 있다. 물고기가 위로 역류할 수 없듯이 삶의 역행은 고달플 뿐이다.자연에서 순리를 배우자 인생이 한결 가벼워졌다. (p. 사진-198/ 시 199/ 론 225-226) <저자>

 

 * 블로그 : 사진을 못 올려 미안합니다. 詩와 잘 어울리는 사진은 책에서 감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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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 시집 『물보라 은보라』에서/ 2024. 10. 25. <시산맥사> 펴냄

 * 김찬옥/ 전북 부안 출생, 1996년 『현대시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물의 지붕』 『벚꽃 고양이』 『웃음을 굽는 빵집』,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