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어머니의 가르마/ 김찬옥

검지 정숙자 2024. 10. 28. 01:36

 

    어머니의 가르마

 

     김찬옥

 

 

  쪽진 어머니 머리에 난

  반듯한 길이 있어

  오 형제가 굶주림은 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가르마를 뽑아 전봇대 세울 때쯤

  보릿고개도 먼 신화가 되었다

    -전문-

 

  시인의 산문> 中: 슬픔밖에 모르던 내가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 스스로도 궁금해질 때가 있다. 슬픔은 소리소문없이 혼자 왔다 가는 것이 아니다. 머물렀다 간 그 자리에 나만이 풀 수 있는 암호를 남기고 갔다. 그 암호를 푸는 일이 글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물 자체인 어머니와 삼라만상을 품어주는 대자연을 몰랐더라면, 나는 글 쓰는 일을 시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여름 울 안에 살구나무라도 한 그루 있었더라면 어린 시절이 그리 팍팍하지는 않았을 걸,

  아버지의 술을 피해 어린 내 영혼은 늘 집 밖으로 떠돌아야 했다. 결국 아버지는 술에 패해 일찍 생을 접어야 했고, 어머니는 혼자서 집 안팎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여자 혼자서 농사일 하는 어머니 손길을 돕느라 난 자연에서 좀 더 일찍 인생에 눈을 떴는지도 모른다. 집을 겉돌며 들과 산에 피어난 들꽃들과도 친숙해져 갔고, 그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자연은 내 글쓰기의 바탕과 배경이 되었고 어머니는 내 글의 모태가 되었다. 어머니의 한풀이로 시작된 글쓰기가 어머니의 입을 빌려 인생을 노래하게 했고,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들판의 수수처럼 나를 익어가게 했다. (p. 사진-34/ 시 35/ 론 219-220) <저자>

 

 * 블로그 : 사진을 못 올려 미안합니다. 詩와 잘 어울리는 사진은 책에서 감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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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 시집 『물보라 은보라』에서/ 2024. 10. 25. <시산맥사> 펴냄

 * 김찬옥/ 전북 부안 출생, 1996년 『현대시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물의 지붕』 『벚꽃 고양이』 『웃음을 굽는 빵집』,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