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폭력, 애도, 정치(부분)/ 김춘식

검지 정숙자 2024. 10. 9. 13:27

 

    폭력, 애도, 정치(부분)

 

    김춘식/ 문학평론가

 

 

  애도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내적 의미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칸트적 윤리의 명제를 실천하는 일이고 그래서 누구도 이 책임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다.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21세기적인 비전을 획득하는 과정에는 사실 이러한 거대 주체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거대 주체의 지배 아래에 있는 개인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리고 자유가 없는 주체는 동시에 그 자유의 행사를 통한 윤리적 책임도 질 수가 없는 것이다. 기억과 신체에 대한 억압이 해방된다는 측면에서 90년대 이후의 민주화는 새로운 공동체와 정치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의 측면은 그 자체로 폭력과 애도에 대한 성찰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지 그것의 성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특권과 폭력의 공모, 그리고 기울어진 운동장과 특권적 구조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이 있고, 최근의 국제질서는 신냉전체제라고 불릴 만큼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문학과 애도는 이 점에서 여전히 전방위적으로 진행중이다. (p. 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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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봄(89호)호 <신작> 에서

  * 김춘식/ 문학평론가, 1992년 《세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평론집『불온한 정신』, 연구서『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등,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