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막
윤의섭
네 어둠을 지켜줄게
이런 마음은 눈 내리는 장면을 닮은 것이다
나는 바닥까지 드리운 결심을 걷어내지 않는다
몇 년을 지나 깬 듯한 아침
이사 온 지 한참 됐어도 낯선 거리
버스기시에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식당 주인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나로부터 동떨어져 있다
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창가에 앉은 나는 거대한 눈물이었다
네 어둠은 새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저주를 나는 거둬들일 생각이 없다
내가 막고 있는 건 햇빛 별빛 가로등 빛 무수한 종류의 빛 반대편으로 내몰린
모든 곳으로부터의 끝에 사는 생물
나는 풀려날 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두려운 것일까
눈처럼 마침내 사라져 버리는 일은
-전문(p. 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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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봄(89호)호 <신작시> 에서
* 윤의섭/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시집『어디서 오는 비인가요』『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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