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눈물 젖은 국어사전/ 허금주

검지 정숙자 2024. 10. 6. 02:00

 

    눈물 젖은 국어사전

 

     허금주

 

 

  나는 누군가의 허드렛일을 하는 노예인 적이 없다 

 

  열다섯  소녀가

  백일장 장원 선물로 국어사전을 가슴에 안은 날

  한평생을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 길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고

  최소한의 물질적 자유를 허덕여 했던

  백 년 전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와 숨결을 섞어 본다

 

  생계를 유지할 하루가 충분하다면

  국어사전을 품에 안은 채

  만리장성 보다 길게 이어진 꿈의 성으로 들어가도

  쓸쓸함은 살아

  의식을 가진 모든 말들에서 서로 볼을 부비며

  순간 불꽃을 일으켜 다음 글쓰기로 이어진다

 

  이사를 몇 번 하고

  가끔 타인으로부터 값비싼 보석을 건네받으면서도

  끝내 헌책 꾸러미로 팔아 버릴 수 없는 

  굶주린 배를 가죽혁대로 졸라매며 펼쳐들던

     -전문(p. 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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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봄(89호)호 <신작> 에서

  * 허금주/ 1993 『심상』으로 등단, 시집『책으로 태어나는 여자』『비자림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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