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새-곤줄박이
유종인
근처까지만 내려온다
밤새 눈물범벅을 만든 사내를 만나러
비구니가
비구니를 버리려고 겨울 산길을 내려오다가
산바람 소리를 듣는다
사내가 기다리고 있는 읍내 다방으로 가려다
허옇게 잎끝이 마른 산죽山竹 덤불에 웅크린 고라니의 말간 눈빛과 마주친다
발목이 부러져 인가에도 기웃거리지 못하고
인중이 갈라진 코를 벌름거리며 우는 고라니 때문에
비구니는 코앞에 닥친 간이 정류장을 연신 바라만 본다
이만하면 됐지, 이만하면 됐어
마음에 솟는 붉은 정념을 짙은 회색의 승복으로 가린 그대여
사내는 공연히 차를 식히며 식어가는 차의 일생을 내려다보며
자신에게 오고 있을 머리 깎은 애인의 발걸음을 센다
햇살이 비낀 다방 유리창에 날아가는 새 그림자 기척에
머리 깎은 애인의 발걸음을 놓치고 얼마쯤 다시 센다
이만하면 됐지,
비구니는 눈물범벅의 여인 속에서 등돌려 빠져나오고
울음은 목젖이 보일까 입만 벌리고 깊어진다
사랑은, 근처까지만 온다 근처까지만 와서 울다가 되돌아간다
-전문, 시집 『그대를 바라는 일이 언덕이 되었다』 (문학동네/ 2024. 6.)
* <이달의 시 현장 점검> 中 (p. 245-246)
- 좌담: 오은경 · 정재훈(사회) · 전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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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8월(416)호 <이달의 시 현장 점검/ 좌담> 중에서
* 정영효/ 시인,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계속 열리는 믿음』『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 오은경/ 시인, 2017년 『현대문학』로 등단
* 정재훈/ 문학평론가,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전호석/ 시인, 2019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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