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피다
신덕룡
이름값을 하느라 저렇듯 망설였구나
새로 꺼내든 붓끝에
먹물부터 잔뜩 머금었지만
바람결에 잎새들 뒤척일 때마다 마음이 바뀌고 흔들리는지 한 글자 쓰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걸 모를까 멀리서 날아온 나비 한 마리 잠시 머물다 간 뒤
글썽이는, 필설로는 다 하지 못할 그리움이 더 아득해졌는지 붓을 놓아버렸다 팔을 쭉 뻗어 먹물로 얼룩진 손바닥을 펴고 흔들어댄다
눈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놓았다
잠깐의 머뭇거림 하나 없이 부끄러움도 없이
-전문(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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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 2023-여름(92)호 <신작시> 에서
* 신덕룡/ 1985년『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 2002년『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소리의 감옥』『하멜서신』『단월』등, 저서『환경위기와 생태학적 상상력』『풍경과 시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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