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석정호
요양 병원에 엄마를 모셔놓고
오지도 않는 형들과 전화통 속에서
싸우고 돌아가는 길
느닷없이 우박이었다
복숭아나무 옆을 지나고 있었다
후려친 말들이 깊게 박인
열매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새 누렇게 배어든 진물
'이래가 우애노'*
엄마의 울먹임이 컴컴한 동굴이다
침상과 한 몸으로 붙어버린
눈물의 출구가 되어버린
엄마
'나는 잘 있으니 올 것 없다'
나직이 입을 닫으며
자식들의 뺨따귀를 향해 날리는
엄마의 우박 싸대기였다
-전문-
* 이래서 어떻게 하노
▶석정호의 시 세계(부분)_김두한/ 시인
석정호는 나의, 고등학교 동기생이다. 그의 본명은 이정호. 학교와 집 사이만 왔다 갔다 하며 공부만 하던 그 시절에 그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는 사범대학에 들어가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십 대 후반의 까까머리가 육십 대 후반의 노인이 되어 그동안의 체험들이 뒤엉겨있는 내면세계를 조곤조곤 나에게 시라는 이름으로 얘기해준다. 「오늘은 해적이다」「즐거운 핏대」「우박」「호수」등 그가 들려주는 시라는 이름의 이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본다.
*
시 「우박은」"요양병원에 엄마를 모셔놓고/ 오지도 않는 형들과 전화통 속에서/ 싸우고 돌아가는 길 느닷없이 우박이었다"로 시작하며 "자식들의 뺨따귀를 향해 날리는/ 엄마의 우박 싸대기였다"로 끝난다. 이작품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사회에서 요양병원에 맡겨놓고 사는 사회로의 이행기에 겪게 되는 자식들의 마음의 갈등과 죄책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p. 시 208/ 론 210 ·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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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4-여름(102)호 <신작 소시집/ 신작시/ 해설> 에서
* 석정호/ 200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밀행』, <다층문학> 동인
* 김두한/ 198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슬플 때는 거미를 보자』『해를 낳는 둥지』『아침』, 비평집『길은 달라도 산정은 하나다』, 논저『김춘수의 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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