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두한_석정호의 시 세계(발췌)/ 우박 : 석정호

검지 정숙자 2024. 7. 12. 02:08

 

    우박

 

    석정호

 

 

  요양 병원에 엄마를 모셔놓고

  오지도 않는 형들과 전화통 속에서

  싸우고 돌아가는 길

  느닷없이 우박이었다

  복숭아나무 옆을 지나고 있었다

  후려친 말들이 깊게 박인

  열매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새 누렇게 배어든 진물

  '이래가 우애노'*

  엄마의 울먹임이 컴컴한 동굴이다

  침상과 한 몸으로 붙어버린

  눈물의 출구가 되어버린

  엄마

  '나는 잘 있으니 올 것 없다'

  나직이 입을 닫으며

  자식들의 뺨따귀를 향해 날리는

  엄마의 우박 싸대기였다

      -전문- 

  

    * 이래서 어떻게 하노

 

  석정호의 시 세계(부분)_김두한/ 시인

  석정호는 나의, 고등학교 동기생이다. 그의 본명은 이정호. 학교와 집 사이만 왔다 갔다 하며 공부만 하던 그 시절에 그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는 사범대학에 들어가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십 대 후반의 까까머리가 육십 대 후반의 노인이 되어 그동안의 체험들이 뒤엉겨있는 내면세계를 조곤조곤 나에게 시라는 이름으로 얘기해준다. 「오늘은 해적이다」「즐거운 핏대」「우박」「호수」등 그가 들려주는 시라는 이름의 이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본다.

        *

  시 「우박은」"요양병원에 엄마를 모셔놓고/ 오지도 않는 형들과 전화통 속에서/ 싸우고 돌아가는 길 느닷없이 우박이었다"로 시작하며 "자식들의 뺨따귀를 향해 날리는/ 엄마의 우박 싸대기였다"로 끝난다. 이작품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사회에서 요양병원에 맡겨놓고 사는 사회로의 이행기에 겪게 되는 자식들의 마음의 갈등과 죄책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p. 시 208/ 론 210 ·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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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4-여름(102)호 <신작 소시집/ 신작시/ 해설> 에서

 * 석정호/ 200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밀행』, <다층문학> 동인

 * 김두한/ 1988『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슬플 때는 거미를 보자』『해를 낳는 둥지』『아침』, 비평집『길은 달라도 산정은 하나다』, 논저『김춘수의 시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