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지금, 베를린/ 정선

검지 정숙자 2024. 7. 10. 00:18

 

    지금, 베를린

 

     정선

 

 

  연두가 수의를 벗었다

 

  옥죄다,

  를 생각하면 자꾸만 치밀어

  빨간 문어가 돼

 

  연두는 곁에 두고 싶은 안식

  지난해 몰래 숨겨 놓은 안반데기에 연두가 꽃핀다

 

  주머니엔 부정의 돌멩이들이 늘어 가고

  식은 사랑은 꽃으로도 데워지지 않지

 

  하나 연두는 질리지 않는 얼굴

 

  맞은편 좌석에서 볼풍선을 불어넣는 중년의 오후

  헤어지기 싫어 쪽쪽거리는 연인의 오후

  오후는 서글프다

  그 푸르름 위로 느닷없는 우박의 화(火)

 

  깨진 얼굴에 거울을 비치면 위로가 되는 밤

  생각의 벽돌로 견고한 성을 쌓는 안온한 밤

 

  그런 밤은 순치의 시간

  슬픈 자기양육의 시간

 

  천사는 흑백 베를린을 사랑했지

  화해의 키스로 베를린

  희망을 악수하는 베를린

  젖은 솜이불을 덮고도 화려한 장벽을 꿈꾸지

 

  당장,

  나는 나를 느끼고 싶어

 

  팔월의 태양으로 가슴이 찢기고

  연둣빛으로 가슴을 봉합한 노마드

 

  나를 누락시킬 테야

  새 연두 입은 베를린 속으로

      -전문(p. 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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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4-여름(102)호 <다층 시단> 에서

 * 정선/ 2006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안부를 묻는 밤이 있었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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