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밝은_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이 함께인 집(부분)/ 어이! 달 : 신달자

검지 정숙자 2024. 7. 4. 17:04

 

    어이! 달

 

    신달자

 

 

  어떻게 여길 알았니?

  북촌에서 수서에서

  함께 손 잡고 걸었던 시절 지나고

  소식 없이 여기 경기도 심곡동으로 숨었는데

  어찌 알고 깊은 골 산그늘로 찾아오다니······

 

  아무개 남자보다 네가 더 세심하구나

  눈웃음 슬쩍 옆구리에 찔러 넣던

  신사보다 네가 더 치밀하구나

  늦은 밤 환한 얼굴로 이 인능산 발밑을 찾아오다니······

 

  하긴 북촌 골목길에서 우리 속을 털었지

  누구에게도 닫았던 마음을 열었지

  내 등을 문지르며 달래던 벗이여

 

  오늘은 잠시라도 하늘 터를 벗어나

  내 식탁에서 아껴 둔 와인 한 잔 나누게

  가장 아끼는 안주를 아낌없이 내놓겠네

  마음 꽃 한 다발로 빈 의자를 채워주길 바라네

  어이! 달!

     -전문,『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민음사, 2023)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이 함께인 집/ 신달자 시인의 '고회지가' (부분)_김밝은/ 시인

  경기도 성남시 심곡동의 언덕배기에 자리한 이 집에 들어오신 지 5년, 사위의 제자가 설계했다는데, 2021년 미국 건축가 어워드(AAA.American Architecture Awards)의 개인주택 부문에서 '심곡 하우스(Simgok House)'란 이름으로 수상했다. '고회지가'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영문으로 번역할 수는 없었던 듯하다.

  딸 셋, 사위 셋, 그리고 선생님까지 10명의 대가족이 살고 있는 이 집의 이름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임은 온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라는 뜻으로 추사의 글에 나오는 '고회지가高會止家'에서 따왔다고 한다. 입구에는 '고회지가'라 쓰인 아름다운 현판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모인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라 생각하신다는 선생님. 가족은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함께 모여 살기 전에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모두 불러 밥을 같이 먹었다고 하셨다.

                      

  이 한 편의 시(「어이! 달」)가 선생님의 마음이나 현재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내 등을 문지르며 달래"주던 달에게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한 채 떠나왔는데 다시 찾아와준 달. 그렇게 고맙고 반가운 달에게 잠깐이나마 "하늘 터를 벗어나"서 함께 "와인 한 잔 나누"자며 나만의 식탁으로 부를 수도 있는 집이며 치열한 세상에서 힘들게 견딘 낮의 시간을 지나 누구와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밀한 저녁을 데려오기도 하는 집이 바로 선생님의 집인 것이다. 바람도 나지막한 연주를 해주며 곁을 지나가리라. (p. 시 20/ 론 17-18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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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4)호 <시인의 집/ 신달자 편> 에서

  * 신달자/ 경남 거창 출생, 1964년『여상』에 「한상의 밤」당선 & 1972년 『현대문학』에 「발」「처음 목소리」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등단시집『봉헌문자『아버지의 빛『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오래 말하는 사이『열애』『종이』『살 흐르다』등,  수필집『다시 부는 바람『백치 애인』등

  * 김밝은/ 2013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술의 미학』『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미루> 동인, <빈터>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