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님이라 부르던 이름
정빈
어젯밤 꿈속에서
소복이 쌓인 눈 위에 꽃을 그렸어요
베란다 화분에 맺힌 멍울 하나
밤사이 꽃으로 피어나서
이별의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휘청대는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새벽을 깨우던 바람은
눈물 한 번 닦아주지 않았던 방관자
보이지는 않지만 곁에 있는 듯
들리지는 않지만 귓가를 맴도는
꽃님이라 불리던 이름
오늘도
고백으로 시작하는 아침입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전하지 못한 말, 들리나요
마지막 눈이 녹기 전에 누군가
어젯밤 그 꽃을 보셨다면
꼭 전해 주세요
수취인은 울 엄마예요
-전문-
▶ 기름과 돌봄의 능력, 그리고 꽃이었던 시절/ 고명재, 정빈 시인의 신작시에 붙여서(발췌)_차성환/ 시인 · 문학평론가
시 「꽃님이라 부르던 이름」은 서로에게 '꽃'이었던 존재들이 죽음으로 스러지는 순간,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엇이 남게 되는지를 살피고 있는 작품이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엄마"라는 존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마음이 "어제 밤 꿈 속에서/ 소복이 쌓인 눈 위에 꽃을 그"리게 한다. "엄마"는 "꽃님"이라고 불렸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나'는 "꽃"이 피고 지는 것에 유난히 집착한다. 생生과 사死의 교차는 자연 세계의 법칙이다. "엄마"라는 꽃이 질 때, "베란다 화분"에서는 새로운 생명인 "꽃"으로 피어난다. "엄마"의 죽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순환 속에 놓여있지만 '나'는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잠시라도 붙잡으려고 한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생전의 "엄마"에게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떠난 다음에야 혼잣말처럼 입속에 되뇌면서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회한을 뒤로하고 "엄마"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은 것은 간밤에 눈 위에 그린 "꽃"이다. 죽은 이에게 헌화할 때 그것은 당신이 이 꽃과 같이 아름다웠다는 "고백"의 행위가 아닐까. 당신은 아름다운 꽃이었어요. 제가 오랫동안 기억할게요. 생각할게요. (p. 시 236-237/ 론 24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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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겨울(94)호 <신진 조명/ 신작시/ 작품론> 에서
* 정빈/ 2018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칸나의 독백』
* 차성환/ 2015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연구서『멜랑콜리와 애도의 시학』, 앤솔로지 시집 『지구 밖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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