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시집 『헤이, 막걸리』(미네르바, 2023. 12.)
문효치
남의 집에서 자란 몸
이름을 잊을까 봐
뻐꾸기는 한 봄내 제 이름을 불러 댄다
어미가 지어 준 이름
피처럼 토해 내
이산 저 산 나무마다 걸어놓고
목청 돋구어 읽고 또 읽고
-전문-
▣ 강렬한 이미지, 긴 여운(전문)_이유정/ 시인
이 시는 강렬한 이미지와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다. 또한 단어 선택과 이미지 사용이 신중하여 각 단어에 무게가 실려 있다. 시의 리듬을 고려한 흐름과 반복적인 요소들도 독자의 주의를 끈다. 짧은 시의 특성을 잘 살렸기 때문에 시적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기억되고 긴 여운을 남긴다.
화자는 뻐꾸기의 울음을 들으며 자기 내면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남의 집에서 자란 몸"이라는 표현에서 고향을 떠나온 뒤 화자가 타지에서 겪은 외로움과 고달픔이 사무치게 느껴진다. 일제 말에 태어나 한국전쟁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빈곤한 시대를 겪은 시인은 매우 굴곡진 삶을 살았기에 뻐꾸기 울음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이에 뻐꾸기 우는 행위를 자신의 이름을 거듭 외치는 독특한 행위로 묘사하면서 "피처럼 토해 낸다"는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우리는 지금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력을 가진 풍족한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뻐꾸기가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옮겨 가며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은, 아직도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야 하는 고달픈 삶의 여정이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시의 '뻐꾸기'는 시인 자신이거나 이민자의 모습일 수 있다. 차별적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이름, 즉 자신의 정체성을 외침으로써 다른 문화와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모습을 강조한다. 시인은 뻐꾸기의 울음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감정의 가장 깊은 부분을 탐구하고, 그것을 시어로 승화시켜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뻐꾸기의 울음은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정서를 반영하는 메타포로 확장된다. 뻐꾸기가 자신을 이름을 반복적으로 부르는 행위를 통해 정체성과 존재의 확립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인간의 내면적 갈망과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p. 시 264/ 론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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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겨울(94)호 <시집 속의 시 읽기> 에서
* 문효치/ 1966년⟪한국일보⟫ &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계백의 칼』『어이할까』『바위 가라사대』 등 15권, 시조집『너도바람꽃』, 선집 및 전집『백제시집』등 6권,
* 이유정/ 2017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사랑은 아라베스크 무늬로 일렁인다』, 동시집『사라진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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