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한 관계
신명옥
솔직해져도 될까요?
날것은 무모해서 두렵기도 하지요
별빛을 헤아리거나 달무리를 관찰하지 못한 채
편견을 불쑥 쏟아내기도 하니까요
드러내기보다 침묵해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아직 내 그림자의 컨디션과 옆구리의 검정도 모르니까요
오래 말을 묶어두기 잘했어요
질긴 섬유질을 소화시키는 중이에요
거친 말머리를 손질하고 긴 꼬리도 잘라야 하지요
스스로 묻고 답하며 걸어왔어요
나보다 앞서 수많은 고개를 넘어간 당신
시간이 흐른 후 보이네요
내가 넘어야 할 말의 봉우리들
당신에 관해 내 멋대로 발설하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보류하는 게 낫겠어요
걸음이 생각을 기르는 동안
차이를 긍정하는 것으로 소통은 충분하니까요
-전문(p.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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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6집 『시 터』 2021. 10. 22. <한국문연> 펴냄
* 신명옥/ 2006년『현대시』로 등단, 시집『해저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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