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길
함명춘
한번 뻗으면 다시는 되돌아올 줄 모르는
나뭇가지의 길을 걸었다
빛이 흐르는 쪽으로 그들이 허릴 비틀면
나도 따라 허릴 비틀면서
그 길은 아무리 걸어도 몸 누일 곳이 없었다
오로지 걷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
언제나 빨랫줄처럼 걸려 있어
조그만 바람에도 몹시 흔들렸지만
난 온몸이 나뭇가지
수십 개의 잎사귀를 매달고
있는 듯 없는 듯 세상이 낮게 내려다보이는
그 길 위에서 빛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 꺾인 무릎을 다시 펴고 한없이 걷고 있었다
빛, 눈부시도록 많은 유리 창문을 두르고 서 있는
그 거대한 집을 향해
죽고 싶어, 그 집 속에 갇힌 채 영원히 살고 싶어
-전문-
개정판 시인의 말> 전문: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 냈던 책으로 기억된다.
그때 절망과 함께 거리를 떠돌던 나의 시들을 거두어준 분들께 뒤늦게나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일부 오자와 시 순서를 조금 바꾸었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과거를 성형하고 치장하는 것보다는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버티며 살아냈던 날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었다.
몸은 그대로인 채 새옷으로 갈아입은 이 시집이, 세상에 나가 단 한 분의 품에라도 안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p. 시 95/ 론 7) <저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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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에서/ 초판 1쇄 발행 1998. 7. 6. & 2판 1쇄 발행 2023. 2. 6. <문학동네/포에지> 펴냄
* 함명춘/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무명시인』『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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