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매화가 오시는지 외 1편
정하해
흙이 터지자 개울은 산을 내려간다
물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모두 봄이라 옮겨 쓰고
바람의 입술은 푸르다 하자
누가 그리운 날들을 말하지
않고 매화를 만나랴
우리들 봄날은 아름답고 푸르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스무 살에 두자
저녁은 조용하고 개울은 멀리서 운다
내가 저 흰 빛을 모르듯 그도 나를 모른 채 오는 것이다
우리들의 봄날은 설레이다 끝이 난다
아프면 아픈 대로
소리없이 타도록 그냥
두자
-전문(p.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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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요일, 지나갔다
해넘이 쪽으로 산 것이거나 죽은 것이거나
모두 뻘로 돌아와 엎드렸다
생의 현관을 열어둔
누군가는 노을을 중계하고
우리가 여장을 놓는 건, 몸이 헐어서가 아니라
이쪽에서 이쪽으로 담담히 바라보다
그럴 수 없이, 보다
너라는 광기를 읽은 밤은 거짓말처럼 잠이 온다
잠은 따갑기만 해서
어느 전생이 열리는 건지도 몰라
뻘을 베고 누웠다
다른 요일, 지나가고 있다
-전문(p.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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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다른 요일, 지나갔다』에서/ 2024. 5. 20. <시산맥사> 펴냄
* 정하해/ 2003년『시안』으로 등단, 시집『살꽃이 피다』『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바닷가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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