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정하해
너를 찾으러 천 리를 오니 눈물이 난다
영영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봐
구척장신인 미륵존불 앞에서
절 하나에 너를, 절 두 번에 또 너를
우리가 헤어진 것도 없으니 달리 찾을 방법도 없지만
법당 앞을 지키는
꽃무릇들과
오 층 석탑에 올라서니 해가 기울고 있다
용화세계였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가 바로 미륵불이다. 화자는 금산사 미륵불 앞에서 절을 할 때의 감회를 적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륵불 신앙이 희망의 신앙으로 수용되어왔다. 56억 7천만 년 후에 나타난다는 숫자 역시 상징적이다. 그때 이 세계는 이상적으로 바뀌어 땅은 깨끗하며 꽃과 향기로 가득하다고 한다. 지혜와 덕이 갖추어져 기쁨으로 가득할 거라고 한다. 미륵불의 세계인 용화세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공덕을 쌓아야 한다.
미륵불 신앙은 중생의 업장과 번뇌를 끊고 자비심을 닦아서 미륵불의 국토에 나도록 하는데 진의가 있다. 후삼국의 궁예가 정치적인 계산으로 미륵불 행세를 한 것은 미륵 신앙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라 하겠다. 또한 금산사는 후백제의 견훤이 그의 장남 신검에 의해 강제로 감금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장소를 찾은 화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수련한다. 꽃무릇은 꽃이 피면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 꽃은 저문다. 영영 만날 수 없는 사이, 메타포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헤어진 것도 없으니 달리 찾을 방법도 없"고, "오 층 석탑에 올라서니 해가 기울고 있"지만 용화세계를 그리는 실천행이 진심이다.
이 시는 독자를 미륵불이 도래하는 거대한 시간의 영원성 앞으로 데리고 가서 일상의 안달복달이 얼마나 작고 부질없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덧없는 세상사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마음을 돌아보고 무상한 본질에 하심이 되는 가운데 불행으로부터 가벼워질 수 있다는 성숙한 인식이 있다. 이 시를 찬찬히 새겨 읽는 이유다. (p. 시 57/ 론 119-120) <박수빈/ 시인 ·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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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다른 요일, 지나갔다』에서/ 2024. 5. 20. <시산맥사> 펴냄
* 정하해/ 2003년『시안』으로 등단, 시집『살꽃이 피다』『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바닷가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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