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늪/ 김혜천

검지 정숙자 2024. 5. 30. 16:20

 

   

 

    김혜천

 

 

  화사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일으키던 거울이

  사금파리로 흩어지고

 

  봄은 아직 결빙을 품고 있다

 

  귀에 포진한 대상이

  안면을 강타한 후

  얼굴에 동거를 시작한 삶과 죽음

 

  경계에서 흔들리다가도

  허들을 딛고 뛰어넘던 사고체계도

  잘 따라오던 영혼도 눈보라에 길을 잃었다

 

  빙자옥질氷姿玉質이고 싶던 소망 실종되고

  아치고절雅致高節도 아득한 절벽 되었다

 

  복원을 위한 몸부림

  하데스보다 차고 어두운 늪

 

  가장 아끼던 것을 허문 이여

  눈 한번 깜박이는 것이 기적임을

 

  외롭다 여기던 길들이

  보석함 열리는 길임을 알게 하려고

  연단을 거듭하는 이여

 

  천수 천안으로 슬픈 체온 어루만져

  화사한 웃음으로 부추기는 이여

     -전문(p. 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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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하우스』 2024-상반기(창간)호 <시 1부> 에서

 * 김혜천/ 2015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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