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파라솔
김지헌
테라스 한쪽 고장 난 채 서 있는 파라솔
고개가 삐딱 어느새 뼈와 살이 따로 논다
빗방울도 햇살도 놓쳐버리곤
하는 일 없이 멍때리고 있는 게 꼭 나 같아
건축업자가 집을 완성하고 입주한 그 순간부터
집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영원이라고 믿었던 것들 조금씩 무너져 가듯
그와 내가
이것도 사랑이라며 동상이몽에 빠져 있을 때
때로는 햇살로 때로는 바람이나 빗방울로
서로를 단단하게 묶어 둘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착각이었는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시작하면
사랑 한 스푼에 눈물 여섯 스푼쯤의
뜨거운 수프가 되고 만다고 했던가
한바탕 울고 나선 누가 볼세라 얼른 털고 일어나
다시 반짝반짝 새것처럼 닦아 내놓았었다
지금 와서 다시 보니
고장 난 파라솔을 제법 쓸 만하게 고쳐놓은 사람
누구였을까
-전문(p.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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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하우스』 2024-상반기(창간)호 <시 1부> 에서
* 김지헌/ 199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배롱나무 사원』『심장을 가졌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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