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도라산 역/ 최금녀

검지 정숙자 2024. 5. 12. 02:09

 

    도라산 역

 

     최금녀

 

 

  나,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

  눈밭 사이로 마중을 나오는 팻말, 파주 도라산 역······

 

  도라산 역은 내 마음속 맞춤 가락

  '돌아가는 고향역'의 은어

 

  들꽃이 필 때, 흰 눈이 날릴 때, 망향제단에 절 올리고

  렌즈의 각도를 맞추고, 그 너머를 보고

  기적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 정거장 지나면 함흥이고

  한 정거장 지나면······ 고흥이고, 사리원이고, 북청이다

  귀가 닳았다

  애가 닳았다

 

  세상 모르게 잠이 든

  도라산 기차역을 지날 때마다

  나 당장이라도

  운전석을 차고 앉아

  북녘으로 머리를 돌려

  200, 300킬로로 냅다 달려가고 싶다

  천 만의 한숨으로 낡아가는

  저 팻말들 하나하나 껴안고

  울고 싶은

  자유로야!

  파주야!

  도라산 역아!

   -전문(p.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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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터 동인 제7집 『시 터』 2022. 11. 10.  <현대시학사> 펴냄

  * 최금녀/ 1998년『문예운동』으로 등단, 시집『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외 8권, 시선집『한 줄, 혹은 두 줄』, 시와 시인론 · 작품론· 박제천 외『최금녀의 시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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