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 바다 교실
한이나
이층 교실 창가에 기대어 흰 운동장 너머
바라보면 남해바다 한쪽이 정답다
바다가 있는 교실 풍경
몇 걸음 내달리면 닿을 아름다운 거리
내 스무 살 시에 그린 꿈의 자화상 한 장
바다가 없는 곳이 고향인 나는 꿈의 바다 대신
상춧잎 같은 산골 처녀 선생이 되었다
들판에 들꽃 지천인 봄날 때 씻긴다고
우루루 줄지어 아이들 냇가로 몰고
지루해진 오후, 냉이꽃과 싸리나무와 종달새
그리려 자주 언덕에 올랐다
뽀뽀한다고 달겨들던 코찔찔이 1학년 철이랑
가난해도 의젓했던 화전민 반장 준이는
너른 세상바다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폐교로 만든 진도 시화박물관에서 다시
씀바귀 잎 같은 선생 노릇이나 해 볼까
이층 바다 교실 창가에서, 우두망찰
바다를 향해 온 맘 활짝 열어놓고
씌여지지 않은 시집을 읽는다
꿈의 전구 15촉에 반짝 불이 켜진다
-전문(p.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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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7집 『시 터』 2022. 11. 10. <현대시학사> 펴냄
* 한이나/ 1994년 『현대시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물빛 식탁』『플로리안 카페에서 쓴 편지』『유리 자화상』 『첩첩단풍 속』『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귀여리 시집』『가끔은 조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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