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의 시간
최도선
정오에 붉은 사막을 걷는 낙타들,
바람에 몰려다니는 모래가
각을 이루거나 언덕을 이루거나
대양을 향해 출항하는 배처럼
묵묵히 걸으며 자연에 대항하지 않는다
모래바다는 적색거성의 성채 활활 타오르고
소소초를 씹으며 태양을 향해 침 흘리며
이정표 없는 길을 가는 낙타들
제 그림자 칼날 능선 위에 남긴다
미라가 된 나무 곁에 서서
뒤처져 오는 낙타를 보며
어릴 적 달리기할 때 늘 뒤처지던 내 모습 떠올리며
마음 한 조각 모래 속에 묻는다
그곳엔 내 영혼도 들끓었던 옛날이 있었나 보다
붉은 사막
그 위에 파란 하늘
어둠과 함께 추워진 밤
태고 같은
고요
낙타는 가던 길 멈추지 않는다
-전문(p. 34-35)
* 블로그 주: 위 시의 3연 활자 크기, 원본과 일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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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7집 『시 터』 2022. 11. 10. <현대시학사> 펴냄
* 최도선/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1993년 『현대시학』에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시집『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겨울 기억』『서른아홉 나연 씨』『그 남자의 손』, 비평집『숨김과 관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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