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傷痕
나채형
기생 논개제가 있던 음력 9월 9일 외삼촌댁 워리가 생을 마쳤다
그날 한 사춘기 소녀의 왼팔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다
열다섯 어린 소녀는 마당에 걸린 불구덩 화덕 옆에 셋째 동생과 막내 동생이 쪼그려 앉아있는 헛것이 보여 조바심 들었다. 행주를 든 양손은 용광로를 들고 정지 문턱을 넘어서 바닥에 놓는 순간 얇은 먼지 합판에 걸려 넘어졌다. 앗! 뜨거워! 비명과 함께 지옥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걷어 올린 나일론 옷소매 시뻘건 기름덩이 살가죽은 훌러덩 벗겨지고 일그러졌다
찢어지는 절규의 비명에 뛰어나온 집주인아주머니 품에 털썩 안겨 시집 못 가면 어떡해요? 悲嘆의 눈물을 흘린 철부지
"괜찮아 시집 갈 수 있어 오늘 니가 쎠댔구만!"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하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장정 예닐곱 명이 온몸을 붙잡고 마취도 없이 일그러진 팔뚝을 쓱쓱 거침없이 문질러 화기의 이물을 걷어냈다
저승의 깔딱 고개를 넘는 혹독한 고통과 통증을 참으며 죄 없는 의사선생님 면전에 아프다고 실컷 원망하고 평생 울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잔혹한 시간의 고통 앞에 넋을 잃고 꽃다운 몰골은 일그러지고 머리는 산발되었다
다음날 그런 몰골을 방구석 귀퉁이에 내팽겨 두고 엄마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양은그릇 보따리장사 나가셨다. 나 혼자 짊어져야 할 굴레의 시작
-전문(p.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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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인포럼 제3집 『시, 바다와 썸 타다』 <신작시> 에서/ 2023. 12. 26. <미네르바> 펴냄
* 나채형/ 202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사막의 보트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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