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무거운 작심 외 1편/ 강빛나

검지 정숙자 2024. 5. 11. 02:21

 

    무거운 작심 외 1편

 

    강빛나

 

 

  바다 혼자 엄마를 지키게 놔둘 순 없어

  CCTV를 설치했다

 

  바람에 넘어질지 몰라요

  이른 봄 밑이 미끄러우니 우리 삼 남매가 수시로 볼게요

 

  한두 달은 핸드폰에 지문이 쌓이도록,

  개불 구멍 찾아 집게손가락 후비듯이

  고향 집 문턱을 드나들다가

 

  이내 집안 가득 봄을 들여놓고는

  분홍 바람 날리는 언덕을 지키느라

  엄마를 까맣게 잊었다

  오빠도 남동생도 저만치 꽃구경 속에 서 있었다

 

  CCTV는 24시간 저 혼자 엄마를 기키겠지

  행동 굼뜬 독거노인 돌봄이라는 명분을 걸고

  사방 넓은 화각으로 자식보다 열심히

  움직임을 감지하겠지

 

  자식들의 생각은 그저 생각에 지나지 않을 뿐

 

  개뿔!

 

  속옷을 갈아입으면서도 한번 쳐다보고 씩 웃었을 엄마,

  가는 곳마다 조심조심 발가락에 힘을 줬을 텐데

 

  눈 얼음 바람이 구멍 막는 줄 모르고

  문턱이 늙은 몸엔 벽 되는 줄 모르고

  잘 지키고 있겠거니

 

  모처럼 들어간 고향 집엔

  CCTV는 공장 나 뒹굴고

  엄마의 바다에는 수평선만 혼자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문(p. 70-71)

 

 

     -------------------------------------------------

   

<2024, 제10회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작>으로 선정됨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검지가 긴 나는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어둠,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기대를 물고 여린 봄처럼 당신을 가볍게 통과할 줄 알았나 봐요 어디에서나 나 전달법이 좋은데 대답은 머나요 당신을 많이 가져서, 아무것도 안 가져서

 

  목청을 새긴 창문 너머로

  약지를 흔들며 사라지는 당신

  말의 속도를 늦추고 아만다마이드

 

  가진 것이 없어서 배부른 하늘

  몰라서 좋았던 바닥

  어쩌면 검지에 낀 담배 연기의 저녁

  잎은 퍼런 먼지를 털며 살 속으로 미끄러지는 것 같아요

 

  불안한 다리를 흔드는 당신보다 푸성귀를 좋아하는 토끼를 따를까요

  당신의 주기는 반반으로 어우러지는 궁수자리, 그 아래 원죄가 납작하게 자라고 있어요 바둑판은 고요할 때 숨을 참는지 뱉는지, 반듯한 슬픔은 당신 눈에 띄지 않게 무명지로 결의를 다지곤 해요

 

  배고픔과 보고픔을 품고 당신 어디쯤 자리를 잡았어요 여물지 못한 생각은 방랑벽처럼 흩어져 켄타우로스를 따라가요 물에서 소주로 바뀌기까지 소량의 진통제를 흡입해 봐요 무엇이든 반으로 자르면 빈 곳이 많아, 천적이 많은 토끼는 윈시처럼 고리타분해요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아닌 풍선 하나

  높이 띄워 목이 따라갈 때

  전신을 덮은 수피가 뒤틀어진 당신,

  내가 아파요 아프다고요

     -전문(p. 86-87)

  -------------------------                                    

  * 첫 시집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에서/ 2024. 4. 25. <미네르바> 펴냄 

  강빛나/ 통영 사랑도 출생, 2017년 계간『미네르바』로 등단, <미루> 동인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결한 꽃 외 1편/ 강미정  (0) 2024.05.12
둥근 자세/ 강미정  (0) 2024.05.12
문어+해설/ 강빛나  (0) 2024.05.11
비산동 그, 집 외 1편/ 박숙경  (0) 2024.05.09
이월/ 박숙경  (0) 2024.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