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둥근 자세/ 강미정

검지 정숙자 2024. 5. 12. 00:48

 

    둥근 자세

 

     강미정

 

 

  둥글게 스민다는 말이

  소리 없이 울고 싶은 자세라는 걸 바다에 와서 알았다

  둥근 수평선, 모래에 발을 묻고 흐느끼다 스미는 둥근 파도,

  나는 왜 당신의 반대편으로만 자꾸 스몄을까

  내 반대편에서 당신은 왜 그토록 둥글게

  나에게로만 빗물 보내왔을까

  파도가 대신 울어주는 바닷가에서

  둥글게 스민다는 말이 혼자 우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대신하여 울던 당신이

  어두운 곳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오래오래 혼자 울던 당신이

  이른 저녁 눈썹달로 떴다 울고 싶은 자세로 웅크려 떴다

  세상은 울고 싶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다가 둥글어졌을 것이다

  수평선이 저렇게 둥근 것처럼

  나를 비추던 울음도, 나에게 스미던 당신도 수평선처럼 둥근 자세였다

  모두 멀리 떨어져야 잘 볼 수 있었다

  헤어짐이 끝없기 때문에 사랑도 끝없다고 당신은

  둥근 눈물로 혼자 말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나와 당신은 울고 있는 두 개의 원이다. 둥근 원은 혼자 울다가 타자에게 스민다. 그러나 나는 나의 원 안에서 "당신의 반대편으로" 쓰러져 울고, 당신은 "나를 대신하여" "오래오래 혼자" 울면서 "나에게로만 빗물 보내"고 "나에게 스미어" 온다. 내가 너무 아파서 나 대신 우는 당신이야말로 사랑이다. 혼자 울려면 몸을 굽혀야 한다. 둥근 자세는 오로지 우는 자에게만 온다. 내가 아파서 울고 타자가 아파서 우는 둥근 자세들이 모여 세상을 둥글게 만든다. (p. 시 14/ 론 120) <오민석/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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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 에서/ 2024. 4. 28. <북인> 펴냄 

  * 강미정/ 경남 김해 출생, 1994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타오르는 생』『물 속 마을』『상처가 스민다는 것』『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외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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