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문어+해설/ 강빛나

검지 정숙자 2024. 5. 11. 01:41

 

    문어

 

    강빛나

 

 

  내 높은 지능이 연체동물 중 최고라고 했다

 

  머리만 좋을 뿐 나는 천애고아다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사는 습성 탓으로

  겨울 바다 밑바닥을 헤매며 바닥의 맛을 너무 일찍 알았다

 

  가끔 어른들은 집안을 봐야 그 사람을 안다고 했다 먹물을 뿌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매일 웃는 연습을 했다

 

  그들은 나를 바다의 현자라 불렀지만 바다에서 훨훨 떠도는 무념은 알지 못했다

 

  먹고사는 일에는 몸 쓰는 것이 중요해서 발바닥부터 아려왔다

  바위에 함께 몸 비빌 형제 하나 없이 홀로 선다는 것

 

  뼈대 없는 가문이란 것이

  마땅히 후광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이

  눈시울을 이렇게 붉히는 일인 줄 몰랐다

 

  짧게 살더라도

  한 번 눈멀었던 내 사랑 지워지지 않도록

 

  文魚가 文語로 바뀔 수는 없을까?

  그 답을 듣기 위해 오늘도 칠흑 같은 심연을 떠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문어」는 사회적 속성과 내면적 속성이 맞물리면서 감정이 갈등에서 시작되어 불안으로 변용된 시다. 문어는 왜 불안한가? 머리는 좋은데, 천애고아이기 때문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문어는 자신을 지켜 줄 외부 배경이 없어 불안하다. 그 불안은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살아야 먹히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더욱이 문어는 "뼈대 없는 가문"이라서 마땅히 후광을 받을 곳이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러한 존재는 넓은 바다에서 언제 사건화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관습적인 인간은 "집안을 봐야 그 사람을 안다"라고 말한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집안'은 뼈대 있는 가문을 의미하고, '그 사람을 안다'고 하는 환유는 예의범절과 사회적 골격을 갖춘 품성 좋은 사람이란 걸 의미한다. 전통적인 관습이 사회적 잣대로 들어오면 그 사회는 '부'와 '빈곤'의 불균형을 초래해 빈부의 갈등 양상을 드러낸다. (···) '부와 빈곤', '배경 있는 가문과 배경 없는 가문', '섬과 대도시' 등이 서로 경계를 두면 계층 간의 갈등이 일어난다. "집안을 봐야 한다"는 말에 문어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연체동물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눈시울 붉히는 말과 연결되면서 시인은 '문어'를 추체험으로 끌어올려 목소리를 강조하고 있다. 목소리의 의미는 계층 간의 갈등과 사회적 통념이 한 개별체에게 불안을 형성케 하는 정신적 사건이다. 그 때문에 화자는 '文魚'에서 '文語'로 변환 코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p. 시 20-21/ 론 144-145) <권영옥/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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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에서/ 2024. 4. 25. <미네르바> 펴냄 

  * 강빛나/ 통영 사랑도 출생, 2017년 계간『미네르바』로 등단, <미루>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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