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그림자 외 1편
이성혜
몇 달째 둘이 듣던 강좌를 혼자 듣는 날, 허전한 여유로움이
역사박물관 뒤뜰을 거닐게 한다
새문안 길, 건물 한 겹의 뒤란엔 잔디와 작은 가지식물과 꽃나무들이 내뿜는 녹색 호흡이 조밀하다
흐름 밖의 흐름을 느리게 마시며 걷는데 작은 소란이 인다
새다, 박새 한 마리가 제 다리만큼 가는 가지에 얹혀 크고 작은 포물선을 만들며 무게중심을 찾아가고 있다
뿌리까지 뒤흔드는 소요를 견뎌주는 가지
잠시 후 서로의 접점을 찾은 새와 가지가 고요하다
다시 발걸음을 떼다 숨이 멎는다
언제부터인지 피사체를 주시한 채 카메라가 되어버린 그의
렌즈 안으로 고요가 흘러들어간다
그와 카메라와 새와 가지가 통합되었다, 시간의 한 공간에서!
셔터 소리의 여운 그칠 때까지 난, 그들 시간의 그림자였다
-전문(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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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
중국 저 나라엔 인어 아저씨가 있었는데, 왜 인어 하면
아가씨만 생각하나, 문화 편식의 결과다
네가 말한다
편식이라는 거, 아침마다 거울 보는 것과 같은 거?
중국 신화 알기 전엔 인어 성별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다. 인어도 이 바다로 저 육지로 교류하고 혼인하며 글로벌하게 살았으려니 생각했다
우주를 생성하고 신들을 창조하고 역사를 관통하는 두개골 속 상상들, 내해를 배회하다 흘러 나왔던 근원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정처 없는 시간과 장소들을 떠돌다, 편서풍에 흐르는 황사처럼 잿빛 기억의 골짜기에 덮여가고 쌓여도 가겠지
백 년 전에도 없었고 백 년 우에도 없을 너는,
전 · 후 사이 밑줄 친 행을 살아라고
잊혀져 생소해진 것 새로워 생소한 것들 사이를 건너는
넌,
나날을 뿌리 찾아 헤매는 고아 같은 간절기間節基
-전문(p.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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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신을 잃어버렸어요』에서/ 2024. 4. 22. <푸른사상사> 펴냄
* 이성혜/ 서울 출생, 2010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인천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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