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는 시조의 정신력이며 용기라고 합니다
김일연
* 모두가 불행한 사람, 소외된 사람, 버림받은 사람, 가지지 못한 사람, 패배한 사람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일을 해내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저도 어렸을 때는 호롱불을 켜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그 호롱불에 손그림자로 나비며 새며 여우를 만들어 보여주시던 때가 선명히 기억납니다. 한국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사회가 지구상에 또 있을 것 같지 않군요. 문학작품의 모든 소재와 자양은 지나간 나의 삶이며 체험이라고 합니다. 상상도 심리적 체험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많은 시 속에는 시대를 급하게 관통해 온 한과 같은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이처럼 소박하고 간결하게, 담담하고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의 힘일까요? (p. 32-33)
* 절제는 시조의 정신력이며 용기라고 합니다. (p. 35)
* '시는 삶 그 자체이며 삶을 삶보다 더 진실하게 드러내는 은유다' 라고 나름대로 정리해 봅니다. (p. 37)
* 독자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계몽하려는, 하소연하는 태도와 같은 것도 아마추어리즘이지 등단한 시인이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닐 것이지만 지나친 과장이나 말부림도 감동과 진정성을 깎아먹습니다. 하물며 가요조차도 목소리를 꾸미지 말고 말하듯이 부르라고 하지 않습니까. 멋도 아니 낸 듯 낸 멋이 진짜 멋이고요, 화장도 아니 한 듯한 화장이 더 아련하고 곱습니다. (p. 50)
* 시는 주관의 산물입니다. (p. 86)
* '시는 운율과 은유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운율과 은유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운율과 은은유는 시어들의 상호작용으로 생겨나고요. 시어의 운율은 소리에, 은유는 의미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소리는 시의 분위기와 시어의 연결을 화려하게, 부드럽게, 구슬프게 또는 역동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시조의 규칙적인 운율은 완결성이라는 의미 구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산비탈을 한달음에 내리닫는 것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시의 형태가 단시조라 하겠습니다. (p. 88)
* 문학은, 시는 현실을 담아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내는 구체적 심상, 시는 곧 삶이라고 하는 그것이 절실합니다. 시조 역시 '시절가조'에서 말하듯 '당대의 노래', '그 시절의 노래'라는 그 의미를 잘 살펴야 하겠습니다. 현실의 사실적인 인식과 그 구체성에 닿아 있지 않은 심상은 아무리 철학적이며 달관한 표현이라 하더라도 허공의 메아리처럼 공허합니다. (p. 97)
* 흔히 말하는 진실성이란 것도 과거의 경험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p. 99)
* 시조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고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시조의 정형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조의 정형은 흔히 말하는 함축과 여백을 그 특징으로 하니까요. 더구나 시조의 수가 길어지면 각 수가 가지는 완결성의 요구가 있느니만큼 유기적 관계를 이어가기도 쉽지 않아지고요.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단편소설처럼 시조 역시 한 단면을 인상적으로, 개성 있게 보여주는 데에 알맞은, 매우 경제적인 시의 형태라 생각됩니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은 오랜 수련을 요하는 일이지만 시조 중에도 단시조를 쓸 것이냐, 연시조을 쓸 것이냐, 사설시조를 쓸 것이냐는 시인의 스타일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갖습니다. (p. 150)
* 세상은 요절한 천재를 그 화제성으로 더 열심히 기억하지만 열정을 잃지 않고 평생 '나의 길'을 완주해 낸 사람들이 사실은 더 위대한 영웅입니다. (p. 151)
* 서정시에서는 리듬이 큰 역할을 하지요. 특히 시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외형률을 드러내는 일은 어렵습니다. 글자 수의 맞춤을 넘어 운율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시조의 완성은 그러한 운율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많은 현대시조에서 외형률의 파기가 지나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이 자연스러움을 얻기가 어려운 때문이겠지요. (p. 183)
* 예술이란 것은 궁극적으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자연의 모습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초현실의 작품일지언정 그 안에 녹아 있는 철학이 있다면 자연일 것이요, 원숭이가 그렇듯이 철학이 없다면 잡된 흉내에 그칠 것입니다. (p. 201)
* 명작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p. 235)
* 잘 살아낸 삶은 균형 있는 삶입니다. (p. 248)
*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성공적인 은유는 사물들의 유사성을 파악하는 능력이며 유사성이 높을수록 공감과 공명의 장이 넓다'고 했고 '은유로부터 새로운 이미지가 창출된다'고 했습니다. 은유는 '사물들의 유사성을 파악하는 능력'이군요. 또한 하이데거는 '얼마나 간절히 자신을 던졌느냐에 따라 시의 위대성이 가늠된다. 그리고 강렬한 그리움은 범상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물 간의 유사성을 찾아내는 원동력이 된다. 시는 결핍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것이고 그것을 메타포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고요. '시인이 가져야 할 능력이란 메타포를 찾아내는 능력이며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p. 257-258)
* 고통과 상실감으로 점철되는 삶일지라도 그 덧없음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간절함을 사는 사람이라야 할 것입니다. (p. 258)
* 간절함이 시의 깊이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간절함이 없는 시에서 우리가 읽는 것은 언어의 유희일 뿐입니다. (p. 262)
* 예술의 높이는 철학의 깊이를 통해 극대화된다고 하였습니다. (p. 267)
* 조선의 지식인들은 벼슬에 나아가서는 유가의 미의식을 따랐고 벼슬에 물러나서는 도가의 미의식을 따랐습니다. 무위자연에서 자연은 인위적이지 않음, 조작되지 않음을 말합니다. 상선약수는 또한 '우주 만물의 근원은 도이며 도의 본래 모습은 물과 같아' 자연스러운 삶은 하늘이 내린 자기의 성품을 따르는 것이라 했지요.
(p. 267)
* 아무리 짧은 시조라 해도 한 작품을 끝까지 읽게 하는 것은 초장의 첫 줄입니다. (p. 274)
* 중력이란 낮은 쪽에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자연의 법칙이라고도 했어요. (p. 287)
* 토론은 '누가 옳은가'가 아닌 '무엇이 옳은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p. 294)
* 공감이란 것은 쏟아내는 감정이 아니라 절제하고 애이불비하는 모습이 만들어낸 빈 공간, 독자가 들어와 함께 거닐 수 있는 행간에서 더 잘 일어납니다. (p. 319)
* 시조의 미학은 형식이 내용을 빛내고 내용이 형식을 빛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앞으로 시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묻던 젊은 시인이 있었습니다. 좋은 작품, 시조다운 작품으로 '시조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다면 시조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더 늦기 전에 이 물음을 지금, 다시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p.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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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연 시평집 『시조의 향연』에서/ 2024. 4. 17. <책만드는집> 펴냄
* 김일연/ 경북 대구 출생, 1980년 『시조문학』에 천료, 시조집『빈들의 집』『서역 가는 길』『저 혼자 꽃 필 때에』『달집 태우기』『명창』『엎드려 별을 보다』『꽃벼랑』『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너와 보낸 봄날』『세상의 모든 딸들ALL THE DAUGHTERS OF THE EARTH』 『깨끗한 절정』『먼 사랑』, 동화집『하늘발자국』/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회 운영위원, 국제시조협회 이사, <시조튜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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