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부분)
장석원/ 시인
시의 문법과 노래의 문법은 다르다. 좋은 시니까 좋은 가사가 될 것이라고 믿는가. 좋은 노래는 좋지 않은 가사도 좋은 의미로 바꾸는 마법을 실행한다. 노래는 음악과 가사를 함께 거느린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음악이라고 말할 것이다. 많은 고전음악은 가사를 갖지 않는다. 세고비아의 기타 연주에는 가사가 없다. 현대의 힙합 장르는 음악을 배경으로 밀어놓은 채 실연實演하는 새로운 구술口述 예술이 되었다. 시가 노래와 결합해야 한다고? 크로스오버(crossover),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등등 여러 용어들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혼종(hybrid)'이다. 피와 피를 섞는 법을, 유전자를 교배하여 새로운 잡종과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방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유성 생식, 감수 분열, '나'와 '너'의 유전자 절반만 필요하다. 시와 노래는 각각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시와 노래가 포기할 수 없는 각각의 본질은 무엇인가. 시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사회 안에서 조정 · 결정하는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추상적 예술이고, 공기가 없으면 들을 수 없는 음파를 매개로 하는 물질적 예술이 노래다. 여기서 나는 '언어'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고, 노래의 '소리'가 무엇인지를 한 번 더 따져보고 싶다. 시의 소리는 '그 소리'가 아니다. 시의 리듬은 '그 리듬'이 아니다. 시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노래 속의 언어는 시의 그것에 대비되는 점이 아주 많다. 본질적 차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p.259-260)/ (※ 전문: p. 257~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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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4-봄(70)호 < 음악 에세이 · 9>에서
* 장석원/ 충북 청주 출생, 2002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아나키스트』『태양의 연대기』『역진화의 시작』『리듬』, 음악 산문집『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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