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나스카, 마추픽추, 우유니, 아 - 그리고 파타고니아/ 김추인

검지 정숙자 2024. 5. 20. 02:21

<한 줄 노트>

 

    나스카, 마추픽추, 우유니, 아    그리고 파타고니아

 

    김추인

 

 

  * 얼마나 꿈꾸던 남미인가, 멀어서도 못 갔고 비싸서도 못 갔던 지구 반대편에 대한 구름장 같은 그리움 하나 가슴 속에 심어둔 지 30년이다. 미역가닥만 같이 길다란 칠레며 시인 네루다의 마추픽추, 나스카라인, 우유니소금사막 등 이것들을 만나야했다. 또 마야, 에콰돌, 볼리비아, 호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세계 곳곳의 고대인(과학적 탄소연대측정)들이 남긴 벽화 속, 신기루만 같은 외계인 형상들, 이것들이 외계인 개입된 일이 아니라면 분명 우리 지구행성의 조상은 현재의 우리보다 훨씬 우등하고 문명했을 것이란 수수께끼를 품지 않을 수 없었던 것. (p. 22)

 

  * 고집스럽게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광기狂氣의 사람들, 어딘가에 몰두하여 자신의 일밖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역사를 만들고 세계를 변하게 한다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불변의 본질 또한 그 변화 속에 담겨 오늘에 이른다는 믿음도. (p. 42)

 

  * 쿠스코는 안데스 산맥 해발 3,400m 지점의 분지에 있는 잉카제국의 수도. 현지어로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이라 했다.

  스페인의 피사로는 1532년에 500년 동안 평화롭던 쿠스코를 함락. 잉카의 궁전과 신전을 부수고 그 자리에 유럽풍의 궁전과 종교 건축물을 세웠다. 그뿐이랴. 현지인을 잡아 유럽의 동물원에 팔아 넘기기도 했다니. 쿠스코의 심장이라 할 아르마스 광장에 장엄하게 자리잡은 대성당 La Catedral dal Cuzco, 이 건축은 1550년부터 약 10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잉카의 원주민들이 그 노동과 박해에 시달리며 죽어갔을까. 유럽 동물원에 전시되기 위해 잡혀가기도 한 셀크남족도 있었다니. 성당 내부 역시 호화판으로. 은 300톤을 녹여 만든 주 제단과 세공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되. 당시 황금은 모두 스페인으로 몰수해 간 상황. 아마도 스페인 왕은 여기가 황금의 전설을 가진 일도라도쯤으로 알았던 게다. (p. 47-48)

 

  * 마추픽추란 잉카인들이 사용했던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라는 의미.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유적지의 잉카제국은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다.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방대한 제국의 잉카 문명은 계단식 농법, 석재기술 말고도 '키푸'라는 결승문자를 사용하여 매듭과 색깔로 정보를 기록하기도 했다. (p. 52)

 

  * 내가 라스카라인 다음으로 와보고 싶어 하던 신비의 소금호수 그 '우유니'를 새벽과 함께 도착했다. 우리는 3,650m의 고지대 '우유니'라는 흰 설국雪國에 도달한 것이다. (p. 76)

 

  *유니,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점 없이 텅 빈 곳. 나를 중심으로 수많은 원형의 굴렁쇠가 돌고 있는 듯··· 선글라스를 벗으면 바로 장님이 될 수도 있겠다. 눈부신 태양을 받아 치는 소금 알갱이들의 저항, 좀 한참 섰으면 어지럽다. 주저앉아야 한다. 수만의 굴렁쇠들이 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관일지 모르겠다. (p. 76) 

 

  * 볼리비아의 알티플라노* 고원을 걸으면 지구의 민낯을 걷는 것만 같은데

  고도 4,200m, 우리는 다시 말풍선처럼 랜드크루즈 차량 꽁지에 흙먼지를 둥그렇게 매달고 달린다. 가도 가도 알티플라노 분지는 황토의 사막, 날은 뜨겁고 대지는 라마라도 구워낼 듯 타들어가는 형세다. (p. 86)

   * 안데스 산맥 기슭에 있는 고원. 높이 3,000~5,000미터로 사람 사는 지역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잉카문명이 꽃 핀 곳이고, 감자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 'Dali desert' 여기 알티플라노에 살바도르 달리가 있다니. 그 옛날 이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가 걸었던 땅이라고, 그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The persistence of memory'를 남겼다는데 사실 이 고원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 비쥬얼! 하늘과 물과 땅이 맞닿아 있는 곳이다. 여기도 16C, 스페인이 정복하기 이전에는 잉카제국이었다. (p. 88)

 

  * 오후를 혼자 걸으면서 내내 아쉽다. 그토록 좋아하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이 이슬라 네그라(검은 섬이란 뜻)라 했는데 산티아고에서 시외버스로 편도(5천 페소) 두 시간 거리의 바닷가 마을, 그러나 돈도 없고 시간도 안 되는 걸! 그의 질문에서 내가 읽힌다. (p. 99)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네루다 '질문의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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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좋아하는 와인! 몬테스 알파, 사토, 시라즈, 라쉬부와즈, 1865··· 미소가 절로 난다. (p. 101)

 

  *  돌아보아도 믿기지 않는 꿈, 뇌리 속의 저장된 필름이 풀리며 안데스의 보석 몇 개가 눈부시게 온다. "찬란해라! 나스카, 마추픽추, 우유니, 아    그리고 파타고니아," 눈앞이 어룽어룽 젖는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누구에겐지 모를 감사의 숙연함. 안데스 사막 기행, 꿈의 대장정을 마감하면서 나는 간곡히 몇 번이고.

  "안티플라노여 잉카의 안데스여! 한 번 더 불러주시겠습니까? (p. 121) 

 

  *  "오 해냈어 치타, 사랑해. 네 날렵한 몸매의 그 속도는 누구에게도 추종을 허락하지 않았지. 언제 봐도 슬픈 네 눈물선은. 내게 연민을 넘어 널 오래 그리워하게 했었지 아마." (p. 127 )

 

  * 여기 모래의 온도는 60˚C까지 오른다. 폭력적 열기와 모래의 사막에서 내가 도시에 두고 온 그 쓸쓸하고 춥던 사막을 생각한다. 결국은 다 무위에 다름 아니겠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 현실을 질주할 것이다. 탱탱한 독을 뻗쳐 들고 외롭게 달리는 전갈처럼. (p. 155) 

 

  *  가까이서 보는 치타의 눈물선은 더욱 슬펐다. (p. 157)

 

  * Etosha Pan은 길이 130㎞, 너비 50㎞에 달하는 광대한 곳으로 평소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거의 말라 있어 '마른 물의 땅'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렇게 끝없는 호수를 이룬 것을 보면 아까처럼 비가 몇 번 온 모양이다. 이곳도 역시 그 빙하의 흔적으로 옛날 지구의 초창기에 빙하대륙이었다가 점차 적도로 이동하면서 녹아내린 빙하에 의해 pan이 된 거라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이곳이 7억 년 전 지구에 최초로 등장한 생물이 화석 상태로 현재 존재하여 지구 생명체 기원의 땅이라는 것. 경외감과 불가사의한 느낌을 안고 에토샤의 중심을 향해 차는 또 나선다. (p. 167)

 

  * 사막은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귀한 것을 보여준다. (p. 143)

 

  *  bush는 덤불이란 말. 즉, 부시맨은 영어로 덤불에 사는 사람이다. 원 종족 이름은 산San족으로 살아있는 세계문화유산! 부시맨은 남아프리카의 원래 주인이었다. 석기시대 이후 바닷가에서 사냥과 고기잡이로 살던 유순한 성격 탓에 추장도 족장도 없이 가족단위로 문화를 이루며 살던 이들은 호전적인 반투족이나 츠와나족에 쫓기고 19C에 들어와 백인에게까지 쫓겨 칼라하리 사막으로 피해버렸다는데 이 평화로운 족속들의 철학이 예사롭지 않은데

  첫째, 노인들에게 사냥 기회를 주기 위해 몸이 작고 느린 사슴이나 토끼는 눈에 보여도 잡지 않는다는 것.

  둘째, 야생의 열매를 딸 때는 반드시 씨앗이 될 만큼은 남겨두며 벌집도 꿀을 다 따지 않고 벌들이 먹을 만큼 남겨두고 딴다는 것.

  세째, 물 마시러 오는 동물들을 위해 우물 근처에는 절대 덫을 놓지 않는다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철학인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를 떠올리게 한다. 이 부시맨 철학 3개 항목은 아프리카 현지에서 여행사를 하며 우리에게 많은 정보와 도움을 주었던 루시황의 블로그에서 허락을 받고 베껴온 것임을 밝힌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지막한 덤불들, 가끔씩 이정표처럼 낙타가시나무가 우산처럼 가지를 펼치고 섰다. 한참을 그리 지나는가 했는데 어느새 초록풀밭이 보이고 앙증맞은 새끼를 거느린 타조가족이 도로를 건너간다. 우리는 시동을 끄고 그들의 안전한 행보를 위해 기다려주기도 했다. 먼지바람 일던 메마른 평원이 비온 뒤 한나절만에 초록세상이 되다니. TV 다큐물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군데군데 꽃들이 피고, 가시난간 위 작은 새 앉아 휘리릭 댄다. 거짓말처럼 나비도 한두 마리 눈에 뜨인다. 어디서 온 것인가. 곧 습기가 증발하고 나면 그들은 또 어디로 몸을 숨기는가. (p. 168-170)

 

  * 360도의 지평선은 아무리 봐도 인간계가 아니다. 현실이 아니고 오느 소행성에 닿은 듯 착각이 든다.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바오밥나무가 여기 어디 있이 아닐까 싶은··· (p. 177)

 

  * 이제 만델라에 의해 흑인들도 마음대로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으로 26년 만에 로빈 아일랜드 검옥을 출소하여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복수 대신에 백인 가해자들을 용서와 화해로써 과거사 청산을 실시했다. 그러나 어쩌랴.

  흑인들은 자유를 얻었으나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타운쉽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부의 노예가 되어 포도밭에서 하역장에서 막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이들은 지구촌의 또 다른 풍경이다. (p. 186)

 

  * 프로티아는 이 남아연방의 국화國花로 더욱 신비로운 것은 바람에 의해 잎들끼리 꽃송이들끼리 서로 부딪고 두꺼운 꽃 싸개가 벗겨지고 꽃이 피게 된다. 프로티아라는 이름 속에도 이 '비비다'의 의미가 들어있단다. (p. 188)

 

  * 딱정벌레는 뜨겁고 건조한 낮 동안엔 모래 밑에 엎드려 있다가 멀리 바다로부터 안개가 날아올 새벽쯤, 모래 속에서 나와 사구의 경사면에 거꾸로 선 자세를 취하면 새벽 찬 공기에 안개가 딱정벌레의 등짝이며 꽁무니에 걸려 이슬방울이 되어 경사진 등을 타고 내려와 제 입으로 흘러들게 하는 나미비아의 사막 딱정벌레의 지혜, 참으로 신비로웠었다.

  식물 역시 놀아운 진화의 모습이라··· (p. 221)

 

  * 1밀리의 잎에 8센티미터의 가시로 무장하여 잎도둑을 막고 수분을 증발을 줄이는 낙타가시나무.

  그러나 기린이나 낙타는 8㎝의 억센 가시도

  먹을 수 있는 혓바닥으로 진화했으니! (p.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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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추인_배낭 기행산문집 『그러니까 사막이다』 2024.4. 9. <서정시학> 펴냄  

김추인/ 경남 함양 출생, 198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모든 하루는 낯설다』『프렌치키스의 암호』『행성의 아이들』『오브제를 사랑한』『해일』『전갈의 땅』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