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신을 잃어버렸어요+해설/ 이성혜

검지 정숙자 2024. 5. 5. 02:16

 

   

    신을 잃어버렸어요

 

     이성혜

 

 

  이유 모를 총질과 아비규환에서 도망쳤는데요 맨발이네요 무한 앞에 방향 잃고 여기  저기 신을 찾아 헤매요 신이 신을 낳고 낳아 내가 바로 그 신이라 나서는 신 많은데 신이 없네요 조악한 모양 싸구려 재질 엉성한 바느질 가짜  모조  짝퉁, 내가 찾는 신은 디자인 재질 바느질이 최상급,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유일한 신! 이라니까요 상하지도 더럽혀지지도 않는 발 때문에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신을 찾아 헤매요 왈패들 왈짜를 막아주는 주막집 주모 추락하려는 절벽에서 손을 내미는 청동 활 남자 토기에 물을 떠주는 여자, 원치 않는 구원들이 신 찾기를 끝낼 수 없게 하네요 때로는 강풍에 돛단배처럼 휘리릭 대서양으로 나아가고요 때로는 잠자는 지중해 시간에 묶이기도 하고요 중력 잃은 허공에 떠있기도 하면서 근원에서 황혼토록 신을 찾아 신고  벗고! 드디어 닮은 신을 찾았는데 작아요 신 찾기를 끝내려 꾸  욱 밀어 넣었어요 어, 신이 발에 맞춰 자라나네요 무얼 찾아 헤맨 걸까요? 신에 발만 넣으면 원하는 대로 편하게 맞춰주는 차안此岸인데요!

   -전문-

 

  해설> 한 문장: "내가 바로 그 신이라 나서는 신 많은데"라고 할 때 그 신은 발에 신는 많은 신들을 의미하는 것이지 어떤 특정한 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자가 찾고 있는 신은 그런 신이 아니라 "최상급,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유일한 신"이다. 기독교의 유일신이 아닌, 그러나, "원치 않는 구원들이 나타나 신 찾기를 끝낼 수 없게 하네요"라고 할 때의 신은 발에 신는 신임과 동시에 믿어야 하는 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다. 그래서 화자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구원할 신을 찾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 읽으면 "이유 모를 총질과 아비규환에서"  도망치는 상황은 화자 개인의 개별적인 상황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보편적인 삶의 현실이다. 그 현실은 "신이 발에 맞춰 자라나네요 무얼 헤맨 걸까요? 신에 발만 넣으면 원하는 대로 편하게 맞춰주는 차안此岸인데요!" 에서 읽을 수 있듯이 아무 신발이나 신으면 신이 자라나서 발에 맞는, 굳이 무엇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차안此岸 세계라는 것이다. (p. 시 41/ 론 128) <최종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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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신을 잃어버렸어요 에서/ 2024. 4. 22. <푸른사상사> 펴냄 

  * 이성혜/ 서울 출생, 2010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인천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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