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외 1편
동길산
나무에서 멀어진 잎은 어디에 닿나
새에서 멀어진 소리는 어디에 닿나
보이는 데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데도 아닌 거기
젖었다가 마른 손의 물기는 어디로 가나
젖었다가 마른 마음의 물기는 어디로 가나
아예 모르지는 않지만
안다고도 할 수 없는 거기
가 본 곳과 가 보지 않은 곳은 늘 많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늘 많아도
누군들 가 본 곳만 갔으랴
누군들 보이는 것만 봤으랴
바람 세차게 불다가 누그러진 둑길
둑 너머로 밀려간 바람은 어디에 닿나
어디에 닿아서
마음의 젖은 물기를 말리나
둑 너머로 밀려간 물은 어디에 닿나
어디에 닿아서
젖었다가 마른 마음을 다시 적시나
-전문(p.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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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하루
저수지 건너편이 뿌옇다
대낮인데도 차는 라이트를 켜고서 달린다
보일 때는 예사롭게 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돼서야 안부가 걱정된다
여기서 불 켤 무렵이면
거기서도 불 켜서
같은 마음으로 저녁을 맞던 건너편 외딴집
나를 데려갈 수 있는 데까지
언제든 데려가 줬던 건너편 외딴길
외딴집과 외딴길 사이사이
떠나지도 못하면서 안주도 못했던 이의 눈빛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보이지 않던 걸 보게 되는
미세먼지의 하루
친할 때는 친하게 지냈으나
지금은 소식 끊긴 이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미세한 하루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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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거기』에서/ 2024. 4. 5. <포엠포엠> 펴냄
* 동길산/ 1960년 부산에서 나서 부산에서 자랐다. 1989년 무크지『지평』으로 등단했으며 1992년 경남 고성 대기면 산골로 들어갔다. 지금은 산골과 도시를 오가며 지낸다. 산골 사는 30연 동안 시집『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등과 시·산문집『우두커니』등을 내었다. 『거기』는 등단 35년 일곱 번째 시집이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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