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버들가지 외 1편/ 이병초

검지 정숙자 2024. 4. 28. 01:56

 

    버들가지 외 1편

 

     이병초

 

 

  혼자일수록 술 담배 끊고

  이마를 차게 하자고

  지난겨울 구들장을 지었다

  때론 일주일 넘게 누구와 말을 한 기억이 없어

  말의 씨가 말랐는가 싶어

  이불 뒤집어쓰고

  따옥따옥 따오기를 부르다 보면,

  올겨울도 별일 없냐고

  옻닭 국물처럼 구수한 목소리들이

  다가오곤 했다 그럴 때면

  내가 고장 난 기억회로 같았다

 

  두어 차례 송이눈을 받아먹으며

  날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2023년 1월 9일, 같은 학교에서

  두 번씩이나 파면당한 동료들은 어찌 지낼까

  학교 주소를 삐뚤빼뚤 적으며

  무를 깎아 먹기도 하며

  말의 씨가 말랐을까

  잠을 청하는 게 두려웠을까

  고장 난 기억회로를 못 벗고

  춘분을 맞고 말았는데

 

  복직 소식은 없어도

  제비꽃은 보자고 시냇가에 나오니 

  연둣빛으로 빛나는 버들가지

  긴 겨울잠을 털어 버린 듯

  는실난실 봄바람 타는 버들가지들에 다가서니

  속도 없이 내 마음이 그만

  야들야들해진다 

      -전문(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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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시간을 외등처럼 켜 놓고  

 

 

  식빵을 소주에 찍어

  촉촉한 맛을 즐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잎들이 사르르

  땅의 숨소리를 펴 보는 밤

  소주가 오늘도 달다

  나 죽으면 '祝 사망'이라고

  봉투 써 오겠다던 친구

  녀석이 비운 작업실에서

  불을 끈 일밖에 없는데

  소주 적셔진 식빵엔 약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다

  살아갈수록 가슴에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는

  뜻으로 읽히므로,  내 시간을 외등처럼 켜 놓고

  벽에 손톱금 내고 있을 가시네의 밤도

  더욱 서럽지 않다

 

  내 죽음을 물음 뜨러 갔는지

  친구는 영 소식이 없고

  하룻밤 묵어 가자고 촉촉하게

  반짝이는 별

  사르르 바람결 타는 벚꽃 향기에

  심장이 찔리고 싶은 별을

  소주에 섞는다.

    -전문(p.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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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에서/ 2024. 4. 5. <걷는사람> 펴냄 

 * 이병초/ 1998 『시안』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밤비』『살구꽃 피고』『까치독사』 등, 시 비평집『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역사소설『노량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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