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이병초
본관동 앞 농성 천막 곁으로
마을 버스가 삼십 분 간격으로 들어왔다가
학생들을 태우고 떠났다
나는 엔진 소리만 듣고도 시간을 짐작한다는 듯
천막 기둥에 머리를 기대곤 했다
그러다 빵빵거리는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뜨면
"동료들 해고시키겠다는 구조조정 안에
과반수 가까운 동료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2017년 2월 13일이었다
문득 중국 단편영화 <44번 버스>가 생각났다
내 숨소리를 똘똘 뭉쳐 검처럼
뽑고 깊었던 걸까
밤늦도록 베갯잇이 달빛에 빛났다"라고
2년 전 일기장에 써 놓은 글씨가 천막에 어른거렸다
동료라고 믿었던 그들의 시간은 알 수 없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천막의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시간대입니다. 이 시차時差는 너무나 커 보입니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학교의 적막함이 얇은 천막 사이로 스며들어올 것 같습니다. 굳은 의지로 간신히 버티고 있어도 갑작스레 천막 안으로 쳐들어오는 누군가의 무관심과 짜증 섞인 경적에는 깜짝 놀라기도 했을 것입니다. 벌써 2년이나 지났음에도 정작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위 시를 읽고 나서 영화 <44번 버스>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버스의 승객들이 눈앞에서 벌어진 극악무도한 상황을 외면하고 있을 때, 홀로 극렬하게 저항했던 남자는 영화 마지막에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버스에 탔던 승객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전해 들은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시차視差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가 상영된 뒤에 관객들의 반응은 상당히 엇갈렸다고 합니다. 인과응보로 통쾌하다고 본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단지 방관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부 죽여서야 되겠느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라는데 어쨌든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꽤나 큰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평판은 시간이 알아서 해 줄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기장"을 언젠가 다시 읽게 된다면, 우리에게도 "그들의 시간"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평가해야 할 시간이 분명 올 것입니다. (p. 시 78/ 론 112-113) <정재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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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에서/ 2024. 4. 5. <걷는사람> 펴냄
* 이병초/ 1998년 『시안』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밤비』『살구꽃 피고』『까치독사』 등, 시 비평집『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역사소설『노량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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