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위
페르난도 페소아
오, 영원한 밤이여, 나를 당신의 아들이라 부르고
당신의 팔로 나를 품어주오. 나는 왕이라네
기꺼이 내 꿈과 권태의,
왕좌를 버린 사람.
내 약한 팔을 끌어내린 나의 검을
나는 강하고 한결같은 손들에 넘겨주었지,
그리고 바로 옆방에서 나는
산산조각 난 홀과 왕관을 포기했다네.
내 박차는 헛되이 딸랑거리고
나는 이제 쓸모없어진 내 갑옷을
차가운 돌계단 위에 버려두었네.
나는 왕권과, 몸과 영혼을 버렸어,
그리고 그렇게 고요하고, 그렇게 오래된 밤으로 돌아왔지,
해가 질 때의 풍경처럼.
-전문(영역본, 오민석 역)
▶포르투갈에서 페소아 읽기(발췌) _오민석/ 시인 · 문학평론가
페소아가 스물다섯 살(1913)에 쓴 시이다. 그는 그때 이미 적멸의 의미를 알았다. 결국 우리 모두 "폐위"의 길로 간다.
*
페르난도 페소아 생전에 포르투갈어로 출판된 유일한 시집인 『메시지Message』(1934)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시집은 신화와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끌어들여 포르투갈의 이상적 민족정신을 형상화한다. 이 시집의 3부는 각기 "문장紋章Coat of Arms"(1부), "포르투갈의 바다Portuguese Sea"(2부), "숨겨진 비밀The Hidden One"(3부) 의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중에 1부에서 페소아는 포르투갈의 국가 문장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풀어나간다. 1부는 다시 1_터The Fields, 2_성The Castles, 3_방패The Shieids, 4_왕관The Croun, 5_휘장The Crest의 장들로 나누어지는데, 이 제목들은 모두 포르투갈의 국가 문장을 설명하는 용어들이다. (p. 시 167/ 론 167 *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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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결』 2024-봄(창간)호 <시의 바깥을 거닐다> 에서
* 오민석/ 1990년 월간『한길문학』 창간 기념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3년 ⟪동아일보⟫ 평론 부문 당선, 시집『굿모닝, 에브리원』외, 평론집『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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