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시인과 독자, 그리고 겹쳐진 것들(발췌)
남승원/ 문학평론가
매년 여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세계 각국의 한국학 관련 전공 학생들을 선발해서 '한국문학강좌'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 체험 등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 내에 한국의 시문학을 주제로 한 특강을 의뢰받아 수년째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는 '한국 대표 시인의 삶과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정지용, 백석, 박목월 세 명의 시인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프랑스에서 온 한 학생이 그럼 최근 한국에서 유명한 시인은 누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약간의 고민 끝에 나태주 시인을 비롯해서 시집이 많이 팔린 몇몇 시인들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특히 「풀꽃」이라는 나태주 시인의 작품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고 말해 주니 질문을 했던 학생이 자신도 그 작품을 알고 있다면서 반색을 한 뒤 암송을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조금 놀라운 일이었는데,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20여 명의 학생들 중 예닐곱 명이 같이 반색하며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따라서 암송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외국에서 한국어 교육 현장의 실제 모습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와 같은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던 사정을 어느 정도는 짐작해 볼 수 있다.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읽기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중에는 해당 언어로 쓰인 문학도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시 장르가 선택될 때에는 언어 독해 능력만 있다면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소설과 다르게 보다 세분화된 기준이 필요할 수 있다. 너무 길지 않아야 한다거나,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있어 쉽게 동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실제 한 연구에서 제시하는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과정의 시 작품 선택 기준에 의하면 어휘와 문법의 난이도, 문학사적 위상처럼 소설과 공통적인 것 이외에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지는 리듬감을 익히기에 적절한지, 그래서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듣고 느낄 수 있는지의 여부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노래와 같은 인접 장르로의 확산 여부와 함께 학습자들이 익힌 시를 활용해서 '모방시'나 '답시'를 쓸 수 있는지도 고려되어야 하다고 보고 있다.1) 요컨대 시문학의 경우 언어 능력의 수준과는 별개로 독자들이 대상 텍스트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일회적 수용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서 교육 텍스트로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p. 17-18)
한국어 교육을 위한 시 작품 선정에 적용되는 이 일련의 기준들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그간 '독자'를 다소 형식적으로 취급해 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생긴다. 사실 문학이 창작자 개인의 자기만족적 활동에서 벗어나 재생산 구조를 갖춘 하나의 장場으로 구성되기 위해서라면 하버마스가 말한 것처럼 먼저 예술적 공론장의 생성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근대 초기 신문과 문예 잡지를 중심으로 매체가 발달하면서 이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독자'를 문학장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율적 제도로서의 문학을 성립해 나갈 수 있었다.2) 최소한 문학 형성기에 '독자'는 문학의 직접 참여자이면서 문학 재생산의 주된 기반이었던 셈이다. (p. 17-19)
···下略···이 부분은 책에서 일독 要(참고: 전체 페이지. p.17~34)
1) 고은미,「한국어 초기 학습자를 위한 문학 교육 방안 연구 시 텍스트를 중심으로」,『어문논집』 79집, 중앙어문학회, 2019. pp.307-308.
2) 근대 초기 산문이나 잡지 등의 매체들은 거의 모두 독자 투고란을 운영했으며 이후 현상문예, 신춘문예 등으로 이어졌는데 말하자면 문학 제도 성립 초기에는 독자층에서의 적극적인 발굴이 작가군을 형성하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인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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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3-가을(30)호 <issue> 에서
* 남승원/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평론집『질문들의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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