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시의 기원> 中
시는 결국 관념이고, 관념이라는 것은 결국 상징이라는 뜻이다
원구식
시는 결국 관념이고, 관념이라는 것은 결국 상징이라는 뜻이다. 근대철학에서 관념의 발견자는 칸트이고, 그것이 상징이라는 것을 밝힌 자는 카시러이다.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물 자체보다는 현상을 주목했다.이 현상이 바로 관념이고, 그것을 대상이라고 했다. 이른바 주체(서브젝트)에서 대상(오브젝트)으로의 이동이다. 절망이 기교를 낳는다고 했던가? 대단히 겸손하고 도덕적인 이 철학자는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능력의 한계를 규정했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사고의 틀'에 시를 대입해보기 위해 좀 더 철학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플라톤이 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그 토대 위에 집을 지은 것은 칸트이고, 헤겔은 그 집에서 나와 파르나소스 산(실재계)으로 올라갔다. 나는 플라톤이 닦은 토대를 '플라톤 매트릭스'라 말한 바 있고, 그 매트릭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고백한 바가 있다. 칸트는 자신의 집을 안정적인 '지성의 섬'이라고 하고, 이 섬의 바깥은 폭풍우가 치는 망망대해라 했다. 칸트의 이성은 여기에서 멈춘다. 헤겔은 칸트가 멈춘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 변증법이라는 열쇠로 이성의 문을 열고 '절대지'인 정신으로 나간 것이다. (p. 125)
주지하다시피 현대철학은 거의 대부분이 헤겔 비판이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이 그러하고, 레비나스의 타자가 그러하고,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 그러하다. 그러나 최근 인기 절정의 좌익 철학가 지젝의 영향으로 그야말로 죽은 개가 되어버린 헤겔이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p. 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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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오리진』 에서/ 2023. 10. 30. <한국문연> 펴냄
* 원구식/ 경기 연천 출생,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먼지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마돈나를 위하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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