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전달의 두 번째 스텝(부분)
러시아에 소개된 한국문학의 경우
최진석
···前略···
2. 러시아 한국학의 현주소
사망하기 반 년 전인 1880년 6월 8일, 도스또옙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슈킨 동상 제막 연설의 연사로 나섰다. 43년 전 불미스런 일로 결투를 벌였다가 절명했던 천재 시인을 기리는 자리였다. 여기서 그는 푸슈킨이 단지 한 명의 유명 시인이 아니라 러시아의 시인이자 유럽의 시인이었음을 역설한다. 전자와 후자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푸슈킨은 러시아인의 삶과 사유를 러시아인의 언어로 문학화한 첫 번째 이정표였다. 동시에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의 문학과 구별되는 러시아의 문학을 성립시킨 작가이기도 했다. 오늘날 푸슈킨은 괴테나 발자크에 비견되는 러시아 '국민문학'의 시발점으로 간주되지만, 그가 요절한 지 반세기 정도 지난 시점에서는 그저 '오래전 타계한 전설 속의 시인' 정도였을 뿐이다. 도스또옙스키의 연설은 근대 러시아 문학의 기원을 설정하고 이를 문학사라는 제도 속에 기입하는 수행적 행위라 할 만했다. 그로써 푸슈킨의 이름은 유럽 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발전하는 근대 러시아 문학의 '기원'으로서 러시아와 유럽의 문학 제도 속에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p. 191~ ~ ~)
문학의 영웅을 호명하고 기림으로써 기념비화하는 과정은 20세기에도 이어졌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제정 시대의 구습을 혁파하는 데 열심이던 볼셰비키는 1930년대에 이르자 체제의 안정을 주된 목표로 삼는다. 계급사회의 전통을 밀어낸 자리에는 새로운 사회제도가 자리 잡아야 했고, 이는 '제로 포인트'에서 가능한 게 아니었다. 따라서 사회 도처에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내고, 이를 사회주의 기치와 연결짓는 작업들이 벌어진다. 지금도 모스크바의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여러 건축물들, 가령 외무부와 모스크바 대학, 우크라이나 호텔 등은 그런 스탈린주의 건축양식을 대표한다. 바로크와 고전주의를 혼합한 이 양식은 웅장한 풍모와 견고한 권위주의를 표상하는데, 러시아에 뿌리내린 새로운 체제의 위상을 상징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1933년 발표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소비에트 문학이 지향하는 바를 전시하고,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소비에트의 작가들에게 지시하는 문학의 제도적 강령이었다.
제도화는 역사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할 토대를 요구한다. 1930년대부터 러시아 문학사는 푸슈킨을 위시하여 제정 시대의 작가들을 봉건제와 농노제에 저항하며 예술 세계를 구축한 문학적 영웅들로 호출하기 시작했다. 기념비와 동상들이 모스크바와 연방 곳곳에 세워졌고, 그들의 이름을 딴 도시와 거리가 생겨났다. 교육과정에는 체제 이념에 부합하는 선별된 작품들이 실렸고, 사회주의적 교양을 함양하는 필수적 단계로 지정되었다. 문학에 대한 애호는 이런 제도화의 과정을 통해 길러진 사회적 무의식이자 심성 구조에 해당된다.
러시아에서 바라보는 현대 한국문학에 관해 말하기 위해 다소 길게 에둘러 온 것은, 한 나라에서 외국의 문학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외국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번역하여 교육과정에 도입하고 훈육하는 절차 없이, 문학이 문학성 그 자체로 대중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자국 문학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러시아는 17세기 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 서구화 이후 유럽 문학에 대한 '이식화'의 경험을 100년 정도 거치면서 근대문학의 유형과 양식, 제도에 대한 기나긴 학습 과정을 거쳤다.상류계급에 제한된 것이라 해도 제정 시대에는 서구 문화와 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시간을 가졌고, 19세기에는 문호들을 배출하면서 유럽 문학과 동시대성을 공유할 수 있었다. 소비에트 시대에도, 대중의 교양화 과정이라는 명목으로 사회주의 국민문학이 성립했고, 이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근대적 교양의 일부로 정착하게 되었다. 타자성의 인식은 자기성의 확립에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새겨본다면, 러시아 문학의 진흥에는 타자로서의 서구 문학이 주었던 충격을 결코 누락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동아시아 문학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17~18세기 이래 근대성이 서구적 보편성이라는 의미로 확산되었음을 고려할 때, 아시아가 러시아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했음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최초의 한국어 강좌는 19세기 말에 열렸고, 러시아 교육기관에 한국어 학과가 설치된 것은 20세기 중엽의 일이다. 예컨대 러시아 최고 명문 대학으로 손꼽히는 모스크바 대학교의 경우, 본관이 아니라 별관인 아시아 · 아프리카학부(··· 러시아어 약자를 따서 ISA라고 지칭)에서 동아시아 전반을 가르치는데, 한국학은 1956년 설치된 '동남아시아와 몽골, 한국 인문학과'에서 통합적으로 교수되는 형편이다.2) 러시아 전역에서 한국어 학과를 설치해서 정식으로 가르치는 대학교는 대략 35개 정도인데, 대다수가 언어교육 위주의 교과로 특화되어 있어서 학생들의 직업적 관심사를 반영하는 실정이다. 요컨대, 한국의 인문학이나 문학에 대한 교육은 아직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럼 초 · 중등학교의 경우는 어떨까? 2020년 말 재외 교육기관 포털의 보고에 따르면 러시아 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초 · 중등학교의 숫자는 총 30개 교 정도다.3) 2019년 러시아 교육부에서 한국어를 외국어 정규 과목으로 편성한 이래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으나 대체로 많다고는 할 수 없으며, 언어에 대한 교육이 한국학 자체에 관한 연구로 이어지는 길목은 여전히 협소하다. 수교한 지 이제 30년을 조금 남은 양국 관계를 염두에 둘 때, 심화된 한국 연구의 토대를 찾으려는 시도는 아직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날로 가속화하는 전 지구화의 국면에서 러시아 내의 한국학, 특히 문학에 대한 관심을 증대하고 집중을 가할 만한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p. 191-195)
··· 前略 ···下略···이 부분은 책에서 일독 要(참고: 전체 페이지. p.187~211)
2) ISA 내에 독립 학과를 이루는 국가는 이란, 일본, 인도, 중국, 튀르키예이며 아랍학과와 서유럽언어학과가 통합 학과로서 설치되어 있다. 아랍학은 이란학과 튀르키예 이외의 극가들을 포괄하기에 전체 단위로는 작다고 할 수 없고, 서유럽언어학은 언어에만 특화된 교수 영역을 맡으며 인문학 관련된 영역은 본관의 철학부 등에서 따로 담당하고 있다.
3) 「2020년 해외 초등학교 한국어반 개설 현황」, 재외 교육기관 포털, 2023. 8. 18.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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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3-가을(30)호 <criticism> 에서
* 최진석/ 2015년 『문학동네』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러시아인문대학교에서 문화학 박사 학위 취득, 저서『사건의 시학 감응하는 시와 예술』『사건와 형식 소설과 비평, 반시대적 글쓰기』『불가능성의 인문학 휴머니즘 이후의 문화와 정치』『감응의 정치학 코뮨주의와 혁명』『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미하일 바흐친과 생성의 사유』,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해체와 파괴』『러시아 문화사 강의』(공역) 옮김, 현)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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