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김재홍의 생애와 문학(일부)
- 김재홍 선생님을 추모하며
이성천/ 문학평론가
1. 선생님, 제자가 웁니다.
지난 1월 13일 새벽 3시경, 영원히 받고 싶지 않았던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산사(山史 김재홍(1947-2023, 76세) 선생님의 별세別世를 알리는 큰 자제분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문자를 확인한 후, 나는 한참 동안 멍해졌다. 오전의 시간이 다 지나도록 몇 군데 '비상연락'을 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일도 할 수가 없었다. 한없이 서럽고 비통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기에 가눌 길 없이 아쉽고 참담했다. 더욱이 작년 연말 호소향 사모님과의 짧은 통화에서 새해 명절 전 선생님을 찾아 뵙기로 했던 터라, 조금 더 일정을 서두르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해 후회와 원망의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서둘러 가셨다. 지난 50여 년간 생명 · 사랑 · 평화의 가치를 예술과 학문을 통해 실천하셨던, 당신의 고단하지만 영광스러운 삶을 뒤로한 채 그렇게 홀연히 떠나셨다. 평소 좋아하시던 만해 시의 한 구절처럼, 스스로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삶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셨다.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생전 선생님의 문우들과 후배 · 제자들의 추모와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발인 전날의 밤늦은 시간까지 산사연구실의 제자들은 시종일관 침묵, 침묵으로 '님'과의 이별을 예비했다. 1970년대 이후 한국현대시사에서 크나큰 역할을 담당하셨던 우리들의 '님'은 그렇게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영정사진 속 따뜻한 미소만을 남기고 장지인 고향의 충남 천안으로 말없이 향하셨다.
김재홍 선생님! 제자가 웁니다. 우리 학문과 예술에 대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은 여기 이곳에 다 풀어놓으시고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드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 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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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半年刊誌 『한국시인』 2023-봄/여름(4)호 <특집_김재홍 추모>에서
* 이성천/ 2002년 ⟪중앙일보⟫ 평론 당선, 주요 저서『시, 말의 부도浮圖』『위반의 시대와 글쓰기』『현대시의 존재론적 해명』등, 현)경희대학교 교수 & 계간 『시와시학』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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