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김지율_詩네마 이야기『아직 돌아오지 않는 것들』「잊을만 하면 바람이 부네요. 그걸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요.」

검지 정숙자 2023. 3. 29. 00:43

    <詩네마 이야기>

 

    잊을만 하면 바람이 부네요.

  그걸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요.

        최정례_레바논 감정

 

    김지율

 

 

  지중해 연안에 있는 '레바논'이 이스라엘과 국경을 사고 있는 작은 나라란 걸 알지 못하더라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레바논 감정이라는 것.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애인은 옛 애인'이라는 저 말속에 그 감정의 비밀이 있을 것이다.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왜 하필 그 많은나라 중에 '레바논'이냐는 질문에 옛날 짝사랑하던 남자가 TV에 나왔는데 그가 레바논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시를 쓰게 된 아주 단순한 이유를 알고 혼자 피식 웃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읽어도 문제는 없겠지만 그 순간 이 시의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렸다. 이렇게 발랄하고 솔직한 연애시를 읽으면 기분이 상쾌하다.

  옛 애인의 모습을 보고 수박처럼 속이 발갛게 타는 이유. 아무에게 그 이유를 말 못하는  그  마음을 '레바논 감정'이라고 한다면. 옛 애인은 결혼을 해서 예쁜 아기를 낳고 멋진 차를 타며 '왕'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데. 그것을 보는 내내 마음속에 비가 내리는 그것을 '레바논 감정'이라고 부른다 치자. 그런 레바논 감정이 시시때때로 나를 초라하게 할지도 모른다. 다시 과거로 갈 수 있다면 하고 뒤늦은 자책과 후회가 주렁주렁 딸려오더라도. 그래도 괜찮다, 다 괜찮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늙었지만, 어제보다 씩씩하다. 그러니 나는 어제보다 더 발랄하고 어제보다 더 솔직하게 잘 살고 있단다. 나의 옛 애인들아! ▩  (p. 154-155)

 

  ♧ 올리브 나무 사이로(Through the Olive Trees, 1994)

  오늘 당신의 사랑이 나를 기쁘게 하고 오늘 당신의 사랑이 나를 망설이게 하고. 나는 짝수보다 홀수를 좋아하고 오른발보다 왼발이 크다. 나는 장난을 좋아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잘 웃고. 나는 얼음처럼  가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 나는 반쯤 구운 토마토를 좋아하고 나는 떨어진 손수건으로 리본을 만들고. 나는 당신과 아무것도 겹치지 않지만 올리브 나무 사이로 외로운 단문처럼 올리브 나무 사이로 두근거리는 빗방울처럼 가고 있다. (p. 156)

 

  * 블로그 註: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 포스터는 책에서 일독 要 

  ※ 이 블로그에서 최정례 시 「레바논 감정」은 레바논 감정 외 1편 으로 검색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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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율_詩네마 이야기 『아직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서/ 2020. 12. 15. <발견> 펴냄

  * 김지율/  경남 진주 출생, 2009년『시사사』로 등단, 시집『내 이름은 구운몽』, 대담집『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