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해 겨울
이향아
벌써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서정주 선생님이 여러 해 거론되곤 했었다. 서정주 선생님께서 병환으로 누워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뵈러 가야지, 뵈러 가야지 하고 있을 때, 마침 뉴욕에서 다니러 온 김송희 시인을 만나 함께 찾아갔었다.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선생님은 정신이 혼미한가 싶다가도 어느새 가다듬어 정확하고 예리한 판단으로 올바른 말씀을 하셔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하셨다.
"선생님, 이제는 선생님께서 노벨문학상을 타실 때가 되었어요. 빨리 쾌차하셔야 해요."
그 시간 그 장소에 어울리는 말인지 어떤지도 모르면서 나는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위로하여, 힘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선생님의 음성에 힘이 실리면서,
"응! 그렇지 않아도 아까 스웨덴에서 나를 만나러 사람이 왔었다."
마치 사실로 있었던 일인 것처럼 똑똑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멀리 창밖을 바라보셨다.
나는 예상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반응에 놀라면서도, 모든 수식과 장치를 제거한 그분의 마음, 순전한 열망을 엿본 것 같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고 또 무엇인가 자꾸 죄송한 마음도 들어서, 나는 겨우,
"예~예, 그러셨군요."
만 반복하였다. 그러나 '응! 그렇지 않아도 아까 스웨덴에서 나를 만나러 사람이 왔었다.'는 그 말씀, 멀리 창밖으로 바라보시던 선생님의 아득하던 그 눈빛 때문에 나는 가슴 한쪽이 조여드는 것처럼 아프고 슬펐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로 날아가야 할 서쪽 하늘 저 멀리서는 그해 겨울을 재촉하는 이른 추위가 몰려오고 있었고, 선생님의 건강은 자꾸 나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후쯤 선생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라디오 아침 뉴스로 들었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이렇게 읊으셨던 미당 서정주 시인이 어젯밤 숙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수명이 길어져서 이제는 100세를 넘게 살 수 있다는데 선생님이 조금만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 계셨다면 점점 높아지는 국력과 더불어 노벨문학상을 받는 일도 가능했을 것인데,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섭섭하다. ▩ (p. 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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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아 에세이 『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에서/ 2023. 3. 15. <스타북스> 펴냄
* 이향아/ 1963-1966년 『현대문학』 3회 추천으로 등단. 시집『캔버스에 세우는 나라』등 24권, 에세이집『쓸쓸함을 위하여』등 16권, 문학이론서 및 평론집『시의 이론과 실제』등 7권, 영역시집『In A Seed』, 한영대조시집『By The Riverside At Eventide』, 현)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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