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이경교_산문집『청춘서간』「그 사람, 보들레르」

검지 정숙자 2023. 3. 20. 19:36

<에세이>

 

    그 사람, 보들레르

 

    이경교

 

 

  19세기는 여러 분야에서 전근대성과 결별하려는 몸부림이 분출한 시기다. 그런 사회사적 여건은 산업혁명의 충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수공업이 기계설비로 대체되면서 대량생산의 물꼬가 트인 건 사회, 경제상의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 충격은 디지털 혁명의 갑작스런 충격과 대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와도 흡사한 점이 있다.

 

  이런 대전환기에 문학과 예술이 어느 분야보다 앞서 예민한 반응을 드러낸 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그 변화의 맨 앞자리에 시인 보들레르(Baudelare) 있다. 19세기 보들레르(1821-1867, 46세)의 등장은 문학이 전근대성에서 근대성으로의 돌연한 전환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예외와 놀라움'을 예술의 본질로 파악함으로써, 리얼리즘과 낭만주의의 틀을 벗어버린다. 그리고 낯선 것의 정신적 가치, 애매성(ambiguity)의 존재론적 위상을 제고함으로써 상징주의의 문을 열었다.

 

  특히 예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고정관념을 혁파한 안목이야말로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시집 『악의 꽃』은 '차디차고 음울한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집으로 문학사에 충격을 몰고 온다. 그것은 전대의 시편들과 다른 '뜻밖의 놀라움과 기형적인 미'를 선보인 시집이기도 하다. 예컨대 권태, 악, 부패, 시체, 시궁창, 패덕 등을 새로운 가치로 내세웠을 뿐 아니라,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저급한 감각으로 치부되던 후각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그렇다.

 

  말하자면 그의 시편들은 악취로 가득한 괴상한 시편들이다. 그리하여 그는 기괴미(grotesque)란 새로운 미의 영역을 발굴해낸 시인이다. 보들레르의 이러한 일탈은 기계화, 문명화의 우울한 미래를 예견한 고통스런 외침이었으니, 그의 선구적 자각은 말라르메는 물론 20세기의 P. 발레리, R. M. 릴케, T. S. 엘리어트 시의 자양분이 되어 현대시의 새로운 활로를 열게 된다.

 

  특히 주목한 점은 인공성(artifactuality)에 대한 그의 자각이다. 그는 이미 현대예술의 방향이 오브제의 조작과 왜곡에 있다는 걸 눈치챘으며, 현대성의 특질인 인공성을 예술의 본질로 파악했다. 사실을 설명하거나 자연을 재현하는 행위가 얼마나 비예술적 행태인지 깨달은 건 그의 근대적 안목을 엿보게 한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와중에서 보들레르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요컨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밀어내고, 홀로그램이 실재보다 더 실재에 근접한 가상현실의 도래를 우리는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이 충격의 세기에 젊은이들은 나태할 겨를이 없다. 젊은 세대가 연마해야 할 것은 지적 체조이며 상상력 훈련이다. 급격한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임무가 젊은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전공 안에서 이 혁명적 전환기의 핵심을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창조적 역량을 키우고, 변화가 몰고 올 세계상과 대면할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예컨대 기차나 비행기의 출현이 동시성과 다중시점의 시대를 열었으며, 사진기의 등장이 입체파의 출현을 앞당긴 것처럼 디지털 시대에 합당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적 영역을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

 

  디지털 혁명의 시기를 선도한다는 것은 바로 창조적 문화영역을 일구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것은 일찍이 보들레르가 주창했던 정신체조(mental gymnastic)를 훈련하고 실천함으로써 가능하다. 정신체조란 무엇인가? 정신의 근육을 키우는 독서와 상상력 훈령은 물론, 새롭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훈련이야말로 정신체조의 바탕이다.

 

  다시, 보들레르가 젊은이들에게 전한다. '모두들 집단으로 즐길 때, 진정한 영웅은 홀로 즐긴다'고 말이다. 창조적 역량은 집단적 사유의 산물이 아니다. 집단과 중심은 언제나 선풍과 유행을 낳는다. 그것은 획일적 닮은꼴의 문화를 양산한다. 새로운 시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창조적 개성만이 생명력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늘 변방을 주목하고 소외된 영역을 살펴보기 바란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그 길목에서 여러분 또한 역사를 바꿀 전환점이나, 21세기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 (p. 17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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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교 산문 『청춘서간』에서/ 2020 7. 10. 초판 1쇄 & 2022. 5. 17. 초판 3쇄  발행, <행복우물> 펴냄

  * 이경교/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이응 평전』『꽃이 피는 이유』『달의 뼈』『수상하다, 모퉁이』『모래의 시』『목련을 읽는 순서』『장미도 월식을 하는가』, 저서『한국현대시 정신사』『현대시 이해와 감상』『즐거운 식사』『푸르른 정원』『북한문학 강의』『예술, 철학, 문학』『문학길 순례』, 수상록『향기로운 결림』『화가와 시인』『낯선 느낌들』『지상의 곁길』『장강유랑』, 번역서『은주발에 담은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