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인의 무덤
이경교
물고기는 통발에 걸려 죽는 놈보다 물 때문에 죽는 놈이 많다고 한 건 노자다. 물고기뿐인가? 물을 사랑하는 자 물에서 죽는 법이다. 그래서 모파상은 바다를 어부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생떽쥐베리는 그가 그토록 동경하던 창공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그의 넋은 지금도 어린 왕자가 되어, 어느 별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산을 오르다가 산에서 죽은 알피니스트가 어디 한둘인가? 전설적인 일본 산악인 우에무라 나오미나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고상돈처럼 말이다. 수석 채집가는 아름다운 돌에 취하여 급류에서 사망하는 일이 잦다. 돌은 사나운 물굽이에 오랜 세월 수마가 되어, 관통이 되거나 석질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군에 입대했을 때, 예하 부대에 오소리 박사란 별명을 가진 영관장교가 있었다. 야생 오소리를 잡아 사육했는데 20여 마리나 됐다. 그 울안엔 너구리 몇 마리도 함께 있었는데, 오소리들이 너구리를 방석 삼아 깔고 앉아 있었다. 오소리의 지능이 높아서 그렇다지만 너구리들이 너무 불쌍했다. 그런데 얼마 후 오소리박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소리에게 물린 자국으로 독이 번져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푸시킨은 연인을 위하여 결투를 벌이다가 권총에 맞은 상처 때문에 죽었지만, 릴케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장미 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 숨을 거둔다. 그의 묘비명처럼 순수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경우야 다르지만, 평생 불로초를 찾도록 하고 불사약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되었던 진시황제는 겨우 마흔아홉에 죽었다.
죽음이 생의 마침표라면 좀 더 근사하고 기쁘게 죽을 순 없을까? 무지개가 아름답게 사라지는 것처럼, 여명과 함께 새벽별이 자취를 감추는 것처럼. 그렇다. 하늘에 별과 무지개가 있다면 지상엔 시인이 있다.
시인 장호 은사는 쓰러지는 순간까지 원고지 앞에 앉아 있었다. 이형기 시인은 당신의 목표가 아름다운 파멸이라고 되뇌곤 했다. 미당은 말년에 찾아온 불치병을 '시병'이라고, 너무 감동하다가 심장이 견뎌내지 못한 병이라고 스스로 병명을 붙였다. 그리고 그 병으로 갔다.
바다가 어부들의 무덤이라면, 시인의 무덤은 정녕 어딜까? 그가 그 문턱 앞에서 수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상상의 나라일까? 감동으로 가슴 에이는 그 찰나일까? 시인의 무덤이 그가 쓴 시들은 아닐까? 시가 그토록 실망스런 언어로 고개 내미는 순간, 영감을 수놓던 불꽃들은 다 사윌 테니까. 눈부시던 꽃잎들은 모두 떨어져 버릴 테니 말이다.
아니다. 시인의 무덤이란 그가 끝끝내 쓰지 못한 마지막 문장은 아닐까? 지상에 남기지 못한 영혼의 극점, 그 영원한 오지? 그리하여 시인은 돌아올 수 없는 자신의 몸을 그 문장 속에 파묻는 건 아닐까? 그가 다하지 못한 마지막 언어는 신새벽 풀잎 위에 맺히는 이슬방울이거나, 보는 이의 눈길을 대번에 잡아끌어, 가슴이 처연하도록 서늘하게 만드는 그런 꽃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꽃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꽃잎 안쪽을 기웃거리며 자꾸만 꽃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거기 어디쯤 빛나는 문장이라도 박혀있는 것처럼. 아니, 내 무덤이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 (p. 10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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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교 산문 『청춘서간』에서/ 2020 7. 10. 초판 1쇄 & 2022. 5. 17. 초판 3쇄 발행, <행복우물> 펴냄
* 이경교/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이응 평전』『꽃이 피는 이유』『달의 뼈』『수상하다, 모퉁이』『모래의 시』『목련을 읽는 순서』『장미도 월식을 하는가』, 저서『한국현대시 정신사』『현대시 이해와 감상』『즐거운 식사』『푸르른 정원』『북한문학 강의』『예술, 철학, 문학』『문학길 순례』, 수상록『향기로운 결림』『화가와 시인』『낯선 느낌들』『지상의 곁길』『장강유랑』, 번역서『은주발에 담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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