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I love you」라는 이유
이향아
새벽에 카톡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 점심 함께 먹고 영화도 한 편 보자, 내가 좋은 영화 선정해 놓았어, 영화관 바로 옆이 우리 집이니까 와인도 한 잔 마시면서 얘기 실컷 하자. 그럼 제법 좋은 망년회가 되지 않겠어?"
같은 동네에 살다가 일산으로 이사한 정란이가 보낸 메시지였다. 옆집에 사는 수진 씨랑 같이 와도 좋다고 해서 같이 갔다.
우리는 전철을 1시간 40분이나 타고 갔다. 그가 이끄는 대로 백화점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영화관은 바로 위층에 있었다. 제목은 "사랑의 모든 것"이라고 포스터에 나와 있는데 영화표에는 "The theory Everyting"이라고 적혀 있었다.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제목을 바꾸는 경우는 많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것은 다름 아닌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얘기를 영화화한 것이었다.
21세에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2년밖에는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호킹.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제인이라는 여자친구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 호킹이 단호하게 밀어냈지만 제인은 요지부동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I love you"라는 이유로 결혼하였다. 그렇지 'I love you'라는 이유가 보통 허술한 이유인가? 1942년생인 호킹 박사는 아내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세계적인 학자로서의 꿈을 이루고 존경받으며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
영국 여왕은 그를 초청하여 후작이라는 작위를 주었지만, 호킹은 그것도 사양했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인 문제 외에는 아무 마찰이 없었던 사람, 생명의 은인이며 성공의 배후였던 본부인과 이혼하였다. "I love you"라는 이유가 깨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전담하여 간호하던 여자에게로 떠난다. 영화에서는 생략되고 보여주지 않았지만 다른 책에서 읽었는데 그는 둘째 부인에게 학대당하고 매를 맞으면서 죽을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결국 둘째 부인과도 헤어진다.
생명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기도 하지만 생명은 또 사랑하는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대부분의 전기적 영화는 사실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예술성이 없는데 오늘 본 영화는 그렇지 않다. 날은 빨리 어두워지고 갈 길은 멀고 망년회는 약식으로 하는 둥 마는 둥 서돌러 돌아왔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무너질까 조심조심 가슴에 안고 왔다. 동행자가 바로 옆집에 살아서 밤길이어도 든든했다. ▩ (p. 16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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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아 에세이 『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에서/ 2023. 3. 15. <스타북스> 펴냄
* 이향아/ 1963-1966년 『현대문학』 3회 추천으로 등단. 시집『캔버스에 세우는 나라』등 24권, 에세이집『쓸쓸함을 위하여』등 16권, 문학이론서 및 평론집『시의 이론과 실제』등 7권, 영역시집『In A Seed』, 한영대조시집『By The Riverside At Eventide』, 현)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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