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이승하_산문집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가장 아름다운 청혼의 방법」: 도스토예프스키와 안나 스니트키나

검지 정숙자 2023. 3. 10. 15:30

 

    가장 아름다운 청혼의 방법

     - 도스토예프스키와 안나 스니트키나

 

    이승하

 

 

  『가난한 사람들』『백치』『악령』『죄와 벌』『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영혼을 울리는 소설로 '세계 소설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도스토예프스키. 그러나 위대한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은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무질서와 혼돈 그 자체였다. 그를 실패의 연속인 삶에서 구원해준 것은 안나라는 여인이었다.

  멋모르고 비밀 독서회에 들어갔다가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감형이 된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시베리아에서 4년의 형기를 채운 뒤 그는 중앙아시아에서 하사관으로 군복무를 4년 정도 한다. 이미 장교로 제대한 사람에게 하사관 복무를 명했으므로 이것 자체가 엄벌이었다. 시베리아에서 군복무를 할 때 그는 술주정뱅이와 같이 살며 자식도 있는 마리아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마리아의 술주정뱅이 남편이 죽자 그녀와 결혼했는데 마리아는 뜻밖에 신경질이 심했다. 게다가 폐결핵에 걸려 자리보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결혼의 단꿈이 깨어지자 도스토예프스키는 폴리나 수슬로바라는 여인과 바람이 나 병상의 아내를 돌보지 않고 유럽 여행을 떠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디를 가나 도박을 하며 형에게 돈을 부쳐달라고 졸라댄다. 그는 또한 빚을 갚으려고 소설을 쓰다 흥분하여 발작을 일으키곤 하던 간질병 환자였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마리아는 결국 숨을 거두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폴리나 수슬로바와 재혼할 수 없었다. 결혼 상대자로는 부적격하다고 생각한 폴리나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차버렸던 것이다. 그 뒤 도스토예프스키는 안나 쿠르코프스카야라는 젊은 여인에게 청혼했다 이때도 거절당했으니 그의 사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후원자인 형도 얼마 뒤에 죽고 원고료는 도박으로 탕진하여 무일푼이 되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한 출판업자에게 목돈을 빌리면서 장편소설을 정해진 날까지 완성하지 못하면 위약금과 함께, 9년 동안 세 권의 작품집에 대한 모든 저작권을 넘겨야 한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 것이었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속기사를 구해 구술로 4개월 동안 두 편의 소설을 쓰는 일에 착수했다. 빚을 갚기 위해 미친 듯이 소설을 썼고, 그것들이 불후의 명작이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스무 살의 안나 스니트키나는 마흔다섯의 도스토예프스키를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스토예프스키는 너무나 열심히 자신을 도와주는 어린 안나가 마음에 들었다.

  안나의 도움으로 소설은 기한 내에 완성되었다. 1866년 11월 8일, 도스토예프스키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 안나의 집을 찾아갔다. 집에는 마침 안나밖에 없었다. 안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뒤,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새로 쓸 소설의 줄거리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였다. 실패로 이어진 과거지만 진심으로 털어놓는 인생 고백이었다. 

  "······그 예술가는 그런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당신 나이 또래의 젊은 여인을 만났어요. 그녀에게 안나라고 이름을 붙입시다. 나이 차이뿐만 아니라 성격도 많이 다른 그런 사람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겠소? 바로 이 지점이 당신의 의견을 묻고 싶은 대목이요."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눈을 조용히 응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왜 불가능한가요? 그녀가 정말 그를 사랑한다면 그녀 또한 행복할 거예요. 그 사랑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안나의 말을 듣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고 상상해봐요.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내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혼한다면······. 그러면 당신은 그에게 뭐라고 말해주겠소?"

  그제서야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에게 청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라면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생명이 다하도록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거예요."

 

  인생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구원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청혼을 한 것이었고 어린 안나는 존경해 마지않던 분의 청혼에 확신을 갖고 응낙한 것이었다. 당신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도스토예프스키 생애 최대의 도박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때 완성한 소설의 제목이 '도박자'였다. 이 도박은 노름꾼 소설가를 구해준다. 안나는 어떠한 고난과 가난 속에서도 남편이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였고 결국 인류에게 구원의 빛을 전하는 소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성케 했다. 소설을 탈고한 3개월 뒤에 그는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두 사람의 사랑과 삶에 대해 문학사가 시몬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두 사람은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니며 살았고,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는 경우도 많았다. 젊은 아내는 이 모든 고난과 남편의 간질 발작, 끊임없는 노름, 그리고 첫아이의 죽음까지도 꿋꿋이 견뎌냈다. 남편과 남편의 천재성에 대한 헌신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고 변함이 없었다. 이들의 결혼은 진정한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건이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첫 페이지는 헌정사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예프스카야에게 바친다." 그는 생애 최후의 소설을 아내에게 바쳤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요한복음 12장 24절이 나온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는 또 생애 최고의 소설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전문(p. 131-135)

 

  * 블로그 주: 도스토예프스키와 안나 니스니키나의  尊影은 책에서 열람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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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하 산문집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에서/ 2022. 4. 18. <달아실> 펴냄

  *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시집『사랑의 탐구』『뼈아픈 별을 찾아서』『생애를 낭송하다』등, 시선집『공포와 전율의 나날』, 평전『마지막 선비 최익현』『최초의 신부 김대건』『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청춘의 별을 헤다: 윤동주』, 문학평론집『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세속과 초월 사이에서』『욕망의 이데아』『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등, 소설집『길 위에서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