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정재분 산문집『푸른 별의 조연들』「낙타」

검지 정숙자 2022. 10. 11. 22:47

<산문>

 

    낙타

 

    정재분

 

 

  슬픔이 모자라다

  절망이 모자라다

 

  꼽추 등이 낙타

  무릎을 꿇어 등을 낮추는

  짐짝만한 제 몸과 인간의 짐을 지고

  고꾸라질 듯,

  가는 다리 곧추세워

  모래폭풍 속으로 걸어가는

  공양하는 몸을 부리기에는

  한낮 정수리 위의 태양과

  싸늘하게 식는 사막의 밤을 지새워

  독으로 익는 전갈의 꼬리 만큼 절박해져서

  오뉴월 붉은 고추처럼 매워져서

  긍정밖에 모르는 긴 속눈썹을 잊고

  낙타 등에 올라타기에는

 

  내일은 소설,

  대기권에서 살아남은 긴 꼬리 유성이

  쏟아질 것이라고 한다

     -전문 (p. 101-102)

 

 

  ▶ 3부 푸른 별의 조연들→ 반추에 관하여 → 야크 (中) 「낙타」

  소목 솟과의 동물로는 소를 비롯하여 야크, 아프리카의 누, 염소, 임팔라, 가젤들이 있다. 그중에서 야크는 해발 5,000미터 고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야크는 마치 깊은 산중에서 묵언 수행하는 수도승 같다. 땅을 빗질하듯 길고 검은 털이 수도자의 복장과 유사해서가 아니다. 야크는 춥고 황량한 지역에서만 산다. 게다가 산소가 부족한 것이 야크에게는 더 적합한 환경이다. 더하여 소식小食하는데 하루  섭취량이 다른 솟과에 비해 삼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함에도 생명 유지에 혹독한 땅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모양이 장자가  말한 도의 경지를 구가하는 듯하다. 장자는 도를 일컬어 속세에서 천한 삶을 받아들이고  함께 고락을 나누는 거라 했다. 야크는 암컷이나 수컷이나 뿔을 가지고 있고 어깨에 붙어 있는 혹은 무슨 견장인 양 그것의 특징을 이룬다.

  고산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야크에게 의존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어떤 동물도 적응하지 못하는 그곳에서 짐을 나르고, 밭을 갈고, 털과 젖, 버터와 고기를 제공하는가 하면 똥마저 연료로 쓰이니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라고는 없다. 유난히 두드러지는 크고 잘 생긴 뿔이 위쪽으로 휘어 뻗어 있는데 무슨 하늘과 교신이라도 하는지 묵언 수행하며 제 목숨 안에 무언가를 촘촘히 아로새기는 건 아닌가.

  야크는 풀, 허브, 지의류 등을 뜯어 먹으며 얼음이나 눈으로 수분을 섭취한다. 암컷과 새끼들은 큰 무리를 이루며 모여 살지만, 수컷은 대개 혼자 살거나 독신자 무리를 이루어 배회한다. 암컷은 2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고 새끼는 또 1년 뒤 독립한다. 야크는 위협을 느끼면 꼬리를 꼿꼿이 세운 채 빠른 속도로 달아난다. 야크는 겉모습은 둔하고 느려 보이지만 빠르게 산을 오르는 등산 전문가다. 튼튼한 다리로 안정감 있게 산을 오른다. 수도승 같은 야크와 동고동락하려면 삶이 절박하지 않다면 그것을 부리기가 영 미안스러울 듯하다. (p. 99-101)

 

  한 여행지에서 낙타를 타본 적 있다. 나를 태운 낙타의 큰 몸집, 별로 내가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위에 몸을 올리고 그것을 부리려면 나는 절박해야 했다. 인디언들은 사냥하기 전에 왜 자신이 사냥해야 하는지 사냥감에게 멀리서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작은 형제여! 너를 죽여야만 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네 고기가 필요하단다. 내 아들이 배가 고파 울고 있단다. 작은 형제여, 용서해다오. 너의 용기와 힘 그리고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마. 자, 이 나무 위에 너의 뿔을 달아줄게. 그리고 그것을 붉은 리본으로 장식해주마. 내가 여기를 지날 때마다 너를 기억하며 너의 영혼에 경의를 표하마. 너를 죽여야 해서 미안하다. 작은 형제여!"

  이하 동문올시다. 작은 형제여! (p.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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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분 산문집『푸른 별의 조연들』에서/ 2022. 7. 30. <달아실> 펴냄

  * 정재분/ 대구 출생, 시집『그대를 듣는다』『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 산문집『침묵을 엿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