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님아!
김소엽/ 시인
향기만
남겨두고
떠나가신
나의 님아
꽃은 어느 곳에
숨어 있는가
향기는 내 안에
살고 있는데
당신은 어인 일로
말이 없는가
향기만 뿌려 놓고
가신 나의 님아!
-전문-
나의 인생에서 그 사람과의 아름다운 여행의 추억이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별 없는 하늘과 같고 꽃이 없는 지구 같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와의 유럽 여행의 20일간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부터 40년 전의 일이다. 내가 모래사막 같은 인생의 40년 광야길을 그래도 대과 없이 걸어온 것은 보석같이 빛나는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982년도 프린스턴 대학에 남편이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이다. 그곳에서 잠시 틈을 내어 그렇게도 동경했던 유럽 여행을 갔다. 영국을 경유해서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과 독일의 라인강 그리고 이태리 로마를 두루 보고 오는 일정이었지만 그는 영국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그가 전공했던 18세기 영국의 낭만파 시인들의 생가를 구경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낭만파 시인 중의 하나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양친 부모를 어려서 잃고 누이 도로시와 1813년부터 말년까지 살았던 서머셋 카운티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콴톡힐과 셰익스피어의 생가 스트렛포드 어폰 에이번을 찾았다.
셰익스피어 생가를 찾았을 때는 마침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6월이었다. 작은 마을의 담장마다 넝쿨장미가 담장을 넘어 나그네를 반기듯이 미소 짓고 있었고 훈풍에 장미향이 밀려드는 공원 광장에는 운 좋게도 그 고장 오케스트라가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연주하고 있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잔디밭에 앉아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소녀> <백조의 노래>와 함께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보리수>가 연주되었다.
우리는 잔디밭에서 저 멀리 팔짱을 끼고 천천히 산책하고 있는 노부부를 바라보았다. 백야가 드리운 공간에서 마치 이 세상이 아닌 천국처럼 느껴지는 신비로운 시간과 공간을 음미하고 있을 때 그는 불현듯 내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저 노부부 좀 봐요. 행복이란 바로 노년을 저렇게 함께 걷는 것 아니겠어."
그 당시 상기도 삼십대인 나에게 그 이야기는 다소 낯설었지만 지금은 그가 남긴 이야기가 마치 그곳에서 느껴졌던 장미향처럼 나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향기로 남아 있다.
그렇게 말한 그는 내 노년을 끝내 지켜주지 못하고 푸른 40대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 (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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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집 · 서울』 2022-7월(249)호 <친필로 다가오는 詩 64> 에서
* 김소엽/ 1944년 충남 논산 출생, 1978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사막에서 길을 찾네』『그대는 별로 뜨고』『어느 날의 고백』『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마음 속에 뜬 별』『지난날 그리움을 황혼처럼 풀어놓고』『하나님의 편지』, 영문시집『At The Well』『In Case You Can Drop By』『My LOve, My Star』등, 수필집『사랑 하나 별이 되어』『초록빛 생명』등, <윤동주 문학상> 본상 수상, <한국기독교 문화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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