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방초
정재분
한 가닥 향내가 후각을 사로잡았다. 향이 이끄는 대로 시선이 따라가려니 여리디여린 두 닢 이파리가 반짝거렸다. 떡잎을 보면 안다더니 윤기가 유달랐다. 몸을 낮춰 들여다보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모를 고것에 향기가 없다면 눈여겨보았을까. 들숨에 뒤섞인 방초에서 진지한 약성이 폐부로 전해졌다. 여차하면 토라지는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반겼다. 햇살도 신나는 듯 새순 위에서 첨벙첨벙 뛰놀았다.
두 해 전, 당귀 열 뿌리를 심었다. 그중에 네다섯에서 잎이 나는가 싶더니 맥을 못 췄다. 돌아서기가 무섭게 껑충 자라는 거친 풀숲을 알뜰히 막아주지 못했다. 한겨울을 이겨내고 싹이 돋기에 이제는 잘 크려니 했는데 두어 개, 그마저 사라지고 이듬해 한 그루에서 꽃이 피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 미세한 공기의 변화 속에서 방사형으로 뻗은 꽃대궁에 자잘하니 하얀 꽃이 피었다. 폭죽처럼 터진 꽃은 활력이 넘쳤다.
초목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꽃 피는 일이 심상찮음을 알게 되었다. 사력을 다하는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특히 여러살이풀이 꽃을 피우는 것은 자발적으로 생을 마무리하기 직전의 피날레 같았다. 무엇이 힘들었을까, 내게 무슨 하소연을 했을까! 아는바, 당귀는 쌈으로 먹으면 봄을 먹는 것과 진배없다는 것뿐 그것의 생육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돌이켜보니 방향에 리듬이 있었던 듯하다. 훅 끼얹듯이 향을 뿜어 발길을 사로잡은 이후의 방향aroma은 미미했다. 짙은 방향은 신생의 연초록 몇 점이 제 존재를 알리려는 의지의 발현이었을까. 향기로 발걸음을 붙잡아 제 존재를 알렸으니 향의 효용성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진 걸까. 논배미의 벼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지 않던가. 초목도 자의식이 있으려나? 분명한 건 자기 긍정적 식물과 자기 부정적 식물이 발소리를 듣고 나타내는 반응이 다르다는 것, 발소리에 성장을 촉진하는 긍정의 것과 갱신을 못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대별될 것이다. 세계와 호응하는 약성은 본연의 선의로 존귀하다.
세계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자연은 언어 이전의 생태로 말한다. '그것을 간파하고 마디마디에 부응하는 것이 인간의 몫이다'에 밑줄을 긋는다. 지난해 힘차게 꽃을 피운 본연에서 태어난 새싹들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러나 고것들이 뿌리를 내린 곳이 파쇄적 틈새였다. 기특한 생명력을 가만히 들어 올려 옮겨 심었다. 당귀當歸가 돌아왔다. ▩ (p. 6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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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분 산문집『푸른 별의 조연들』 2부 '은유로 말하는' 에서/ 2022. 7. 30. <달아실> 펴냄
* 정재분/ 대구 출생, 시집『그대를 듣는다』『노크 소리를 듣는 몇 초간』, 산문집『침묵을 엿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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